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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정호 앵커칼럼] 기록 대 기록

등록 2017.04.21 20:21 / 수정 2017.04.2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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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학자, 우암 송시열입니다. 그의 문집에는 편지가 6천통이 실려 있습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베껴 써서 일종의 복사본을 보관했던 겁니다. 덕분에 편지를 통해 그 시대를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한글학자 김윤경은 어땠을까요. 60년 내내 메모하듯 일기를 썼습니다. 1957년 일기 한 토막 보시지요. '강의 두 시간. 이병기 중풍 위로. 최남선 작고. 시내버스비가 20환에서 30환으로 올랐다. 업자들이 뇌물 바친 탓인가…'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지켜본 세상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비망록, '망각(忘)에 대비(備)해' 틈틈이 써둔 기록입니다. 수첩이나 일기 같은 비망록엔 역사의 세세한 진실이 살아 숨쉽니다. 고대 로마인도 일상 기록의 중요성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너는 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쓸 일이 없다는 걸 쓰라." 이런 금언을 남겼으니까요.

요즘 들어, 메모의 힘이 실감납니다. 안종범 전 수석은 대통령 지시를 2년 동안 수첩에 빠짐없이 적었습니다. 수십 권이나 되는 수첩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도 권력의 내밀한 모습을 증언합니다.

오늘은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수첩이 등장했습니다. 송 전 장관은 "업무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수첩 수십 권에 써뒀다"고 말했습니다. 회고록을 쓰면서 접착 메모지를 천 장 넘게 써 붙였다고도 했습니다. 북한 인권결의안 유엔 표결 때 우리가 기권한 과정을 둘러싸고, 문재인 후보가 회고록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자, 반박한 겁니다. 관련 문건도 공개했습니다.

작년 시월 회고록이 나온 이래 송 전 장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꼼꼼한 기록에 의존해 쓴 그대로다" 문 후보는 제일 처음에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며칠전 TV 토론에선 북한에게 물어본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문재인
"국정원이 해외라든지 휴민트 정보라든지 많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국정원을 통해서 북한의 반응을 판단해 보도록 했다는 뜻입니다."

기권은 이미 결정했던 것이고, 북한에 통보했을 뿐이라며 관련 기록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기록이 대결하는 양상인데, 하나인 진실은, 늘 그렇듯 밝혀질 겁니다.

앵커칼럼 '기록 대 기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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