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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사과 청문회

등록 2019.03.27 21:44 / 수정 2019.03.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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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일찍이 안 하던 짓을 하게 됐습니다. 20년 전에 진 말빚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람만이 책임을 질 줄 압니다…"

법정스님이 딱 한번 결혼 주례를 서면서 했던 말씀입니다. 스님은 주례 부탁을 받을 때마다 "주례 면허증이 없는 사람"이라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년 전 지나가는 말로 무심코 했던 약속, 그때 진 말 빚을 갚느라 안 하던 일을 했습니다.

스님은 유언에서 "내 이름으로 낸 모든 책을 더이상 찍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 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는 뜻" 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세상에 지는 빚이 말빚뿐이겠습니까. 모진 글로 남의 가슴에 못박는 글 빚, 어긋난 행실로 쌓은 위선의 빚… 그런 모든 빚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드러나는 곳이 인사청문회장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정말 죄송하고요, 정말…"

사흘째 진행되는 장관 인사청문회는 차라리 사과 청문회라고 하는 게 낫겠습니다. 투기성 다주택 투자를 한 후보자는 스무 번, 인성을 의심케 하는 막말 행진을 벌였던 후보자는 열여덟 번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처럼 그동안 진 빚에 책임을 지는 후보자는 이번에도 역시 없습니다.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예전 북한 관련 발언들을 뒤집으면서 "학자의 입장은 진화한다"고 해 말빚만 하나 더 쌓았습니다. 훗날 장관직에서 물러나 다시 학자로 돌아가면 이 말빚이 또 발목을 잡을지 모를 일이지요.

청와대는 청문회에 앞서 제기된 의혹과 흠결들이 "모두 사전에 체크된 내용" 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임명을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후보자들도 청문회를 하루만 버티면 되는 요식절차 쯤으로 여기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년 전 미국 인사청문회 한 장면을 돌아봅니다.

"누구든 대통령에게 '노'라고 해야 하고, 대통령이 도를 넘으면 고무도장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도 이런 후보자 발언 한번 듣고 싶습니다.

3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사과 청문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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