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정치

[따져보니] 김원봉이 국군 뿌리? 광복군 상황 어땠나

등록 2019.06.07 21:10 / 수정 2019.06.07 21:20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앵커]
이렇듯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한 김원봉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말 처럼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면서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할 수 있었는지, 또 그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는지 따져보겠습니다.

강동원 기자. 문 대통령의 말대로라면, 이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하면서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조금 사실과 다릅니다. 공산주의자였던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는 2년동안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해온 좌파 단체였는데요. 중국의 국공합작에 균열이 생기면서 의용대의 80%의 병력이 중국 공산당에 합류해버리는 일이 벌어졌죠. 결국 20%의 병력과 김원봉은 중국 국민당이 재정 지원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단일화 하겠다고 하자 할 수 없이 광복군에 합류한겁니다.

그런데 조선의용대와 광복군의 정치적 성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쭉 대립했었고요. 이내용은 백범일지에 "김원봉이 임시정부 취소운동을 맹렬히 전개했다" 라는 등으로 기술이 돼있죠.

[앵커]
그럼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기자]
조선의용대는 광복군의 1지대로 편입됐죠. 그런데 기존의 광복군에 비해 병력도 크게 모자랐고 주축도 2,3지대 였습니다.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된건 맞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편입된 조선의용대 출신이 아닌 기존 광복군 출신 인물들이 국군의 뿌리가 됐죠.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을 지낸 이범석 전 총리역시 김원봉과 대립하던 기존 광복군 출신이었습니다.

[앵커]
오히려 조선의용대가 북한군 창설에 힘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건 무슨 얘깁니까?

[기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공군으로 넘어간 80%의 조선의용대 출신들이 조선의용군이 됐고, 이들이 6.25 남침 당시 북한 인민군 주력부대로 발전됐다고 일부 서적에 기술돼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김원봉이 월북을 한 이유도 설명이 되는 것 같은데, 김원봉은 언제 월북을 했습니까?

[기자]
김원봉의 월북 시점은 1948년 4월 20일입니다. 남북협상에 참여하기 위해 북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거죠. 이후 김원봉은 북한의 초대 내각에서 우리나라 장관급인 국가검열상에 취임했습니다. 6·25 전쟁시에는 군사위원회 평안북도 전권대표를 맡았고요. 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는 이유로 노력훈장도 받았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최고인민위원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거쳤고, 환갑을 맞아서 노력훈장을 또 받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숙청당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이고요.

[앵커]
김원봉에게 훈장을 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습니다만, 대통령이 6·25전몰 장병의 넋을 위로하는 현충일에 왜 이런 인물을 언급해서 논란을 자초했는지 이해하기는 어렵군요. 잘 들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