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느 판결

등록 2019.06.17 21:48 / 수정 2019.06.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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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이별을 노래하는 가곡 '떠나가는 배'에는 해묵은 사연 하나가 깃들어 있습니다. 국민시인 박목월이 벌였던 사랑의 도피행각입니다. 1953년 중년의 대학교수 목월은 그를 흠모하는 여대생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몇 달이 지나 겨울을 앞두고 목월의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부인은 아무 말 없이, 손수 지은 남편의 겨울 한복과 생활비를 내놓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목월과 여대생은 헤어졌습니다. 시인 양중해가 제주항에서 이별하는 두 사람을 보며 지은 시가 바로 이 '떠나가는 배' 였던 것입니다.

목월은 13년 뒤에 낸 산문집 머리에 부인의 글을 실었습니다. 부인은 "딱 한번 남편의 여성문제로 혹독한 시련이 있었지만 결국은 돌아오리라 믿고, 참고 기다림으로 이겨냈다"고 썼습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영화감독 홍상수씨가 낸 이혼소송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가정을 깨뜨린 사람은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새삼스럽게 눈길을 끕니다. 홍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유부남 감독과의 불륜이 공개된 여배우 이야기입니다.

김민희씨는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주연상을 받고 감독에게 감사한다는 소감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래도 홍 감독의 부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지만 결국 돌아올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육십 몇 년 전 시인의 아내를 떠올리게 하는 믿음입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이혼은 진보된 문명사회의 필수품" 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안정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일까요, 이혼이 흔하디 흔한 세상입니다. 이미 파탄 난 결혼을 법이 유지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 법정이 신선해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세월이 더 흘러 법원의 판단은 바뀌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서로에게 정조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결혼의 본분이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6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어느 판결'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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