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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재후 Talk] 잘못은 없지만 보상하겠다?…오만한 애플

등록 2019.07.06 10:53 / 수정 2019.07.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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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당시 SK텔레콤이 고객들에게 보낸 실제 문자

"귀하께 SKT와 공정위가 협의하여 진행 중인 동의의결과 관련하여 데이터 쿠폰을 발송해드립니다."

2016년 11월쯤, 이런 문자를 받아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SK텔레콤은 왜 고객들에게 무료로 데이터 쿠폰을 발송했을까요, 그리고 이런 일을 만든 '동의의결'은 또 뭘까요.

당시 이통사들의 LTE 무제한 요금제 광고


■ 과장광고의 후폭풍

때는 2013~2014년, 이동통신사들은 'LTE 데이터 무제한'이라는 요금제 광고를 앞다퉈 내보냈습니다. 3G 데이터망보다 빠른 LTE를 개통하고 한창 가입자를 모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고대로라면 LTE 데이터를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일정 LTE 데이터를 쓰고 나면 3G로 전환되고 있었습니다. SK텔레콤뿐 아니라 LG유플러스, KT도 비슷했습니다. 그러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출동했습니다. 이런 광고가 소비자를 기만하는 과장광고에 해당된다며 조사에 착수한 겁니다.

동의의결의 정의


■ 그리고 꺼내든 '동의의결' 카드

이통3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는 공정위에 '동의의결' 카드를 꺼내듭니다. 동의의결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사업자가 스스로 거래질서 개선, 소비자피해구제 등 시정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 여부를 확정치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임."

쉽게 "우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보상할테니 사건을 조속히 종결해주십시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동통신3사도 이런 의미로 동의의결 신청했고, 공정위는 피해보상 방안이 충분히 실효성 있다고 판단해 이를 승인했습니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700여만 명이 무료 데이터 쿠폰을 받았던 겁니다. 이럴 경우 진행되던 심의는 중단되고 법 위반 여부도 더이상 따지지 않습니다.

이통사가 내보낸 애플 TV광고의 한 장면


■ 3차 난타전 끝에 동의의결

이제 2019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공정위는 애플의 거래상 지위남용건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애플이 이통사에게 광고비를 떠넘기고, 스마트폰 물량 구매를 강요했다는 혐의입니다. 법원의 재판에 해당하는 1차 심의는 지난해 12월 12일에 열렸고, 올해 1월과 3월에 각각 2차, 3차 심의가 이어졌습니다. 엠바고(보도유예)가 걸려있고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못하지만 애플은 "우리가 을(乙)이다"라는 주장을 줄곧 펴왔습니다. 공정위와 3차례 치열한 난타전을 벌인 것이죠. 그러다 돌연 지난달 4일 애플은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합니다. 그 동안 치열한 논리공방을 벌였기에 애플의 이런 대응은 의외였습니다.

이통사가 내보낸 애플 TV광고의 한 장면


■ 오만한 애플

애플의 동의의결이 알려지자 언론에서는 '사실상 애플의 백기투항'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애플이 어떻게 보상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의의결 자체가 "잘못을 인정할테니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접한 애플이 이상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사안에 관해 취한 접근방식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어떠한 법률위반도 하지 않은 애플은 이에 대한 강한 반대의 의사를 밝힌다."

요약해보면 "잘못은 하지 않았지만 보상은 하겠다."입니다. 언뜻 듣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다른 의미가 있진 않을까 여러 번 읽어봤지만 결론은 같았습니다. 그 동안 행적을 다시 짚어보다가 문득 애플이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애플 본사의 모습


■ 애플의 속내

만약 동의의결이 받아들여지면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6개월 동안 다퉈온 법리싸움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겁니다. 3차에 걸친 심의를 마치고 애플 자체 판단으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예측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다른 나라 경쟁당국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연쇄적으로 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동의의결이란 제3의 길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징금을 낼 돈으로 보상을 하고, 다른 나라의 사건에 미칠 영향을 최소하는 것이 지금 둘 수 있는 신의 한 수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개과천선의 출발은 반성입니다. 잘못은 하지 않았지만 보상은 하겠다? 애플은 반성의 기회마저 발로 차버렸습니다. 

애플의 동의의결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공정거래위원회


■ 최종 판단은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한다고 무조건 승인되는 건 아닙니다. 이제 잠정 동의의결안을 작성하고, 위원장에게 보고한 후 잠정안을 결정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서 동의의결을 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보상안이나 재발방지대책이 부실하면 기각될 수도 있습니다.

공정위의 판단을 기다려봐야겠지만 애플의 입장대로 잘못이 없다면 심판정에서 더 따져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혐의가 없다면 동의의결도, 과징금도, 연이은 패소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통사들도 반성없는 보상안에 공감할 리가 만무합니다. 이제 공정위의 판단이 궁금해졌습니다. 반성 없이 내민 손을 맞잡을 지, 아니면 그 손에 직접 반성을 쥐어줄 지 말입니다.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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