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느 탈북 모자의 죽음

등록 2019.08.13 21:47 / 수정 2019.08.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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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년 승철이, 일자리를 구해주겠다는 담당 경찰관을 따라 나섭니다. 공장에 들어서면서 경찰관이 당부합니다. 

"절대 북한에서 왔다고 하지 마… 야, 너 살아남아야 할 거 아냐…"

하지만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나 퇴짜를 맞습니다. 승철은 벽보 붙이고 현수막 거는 궂은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길에서 주워온 백구에게 마음을 붙이지만 그마저 차에 치여 죽고, 승철이 백구의 주검을 응시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그리고 자막이 뜹니다.

영화 '무산일기'는 탈북민의 암울한 서울살이를 건조한 시선으로 담아내 열세 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감독의 대학 후배였던 주인공 승철은 영화를 보지 못한 채 암으로 숨졌습니다.

하지만 영화 대신 현실로 접하는 탈북 어머니와 아이의 죽음은 처연함을 넘어 무거운 납덩이처럼 가슴에 얹힙니다. 모자는 석 달 전 마지막 은행 잔고 3858원을 인출한 지 보름 만에 숨졌고 그 두 달 뒤에 발견됐습니다. 수도는 끊겼고 냉장고에는 고춧가루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사(餓死)라는 말이 21세기 서울에서 들려오고, 아사자가 굶주림을 피해 도망쳐온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황망합니다.

근래 들어 탈북민들에 대한 걱정스런 소식이 부쩍 많았기에 그 황망함은 불안감으로 바뀝니다. 이 정부 들어 탈북민이라는 말은 금기어처럼 돼버렸습니다. 탈북민 출신 기자의 남북회담 취재를 막고, 탈북민 교육기관 하나원 20주년 행사는 장차관이 불참한 가운데 취재를 봉쇄했습니다.

정부가 왜 그러는지는, 북한 목선 삼척 입항 때 청와대 소통수석이 한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승선자들이 귀순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그게 보도됨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된다"

이런 생각이라면 남한 사회의 탈북자들은 그 자체로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쩍 불안과 소외를 하소연하는 탈북민이 많습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탈북민이 23%에 이르렀습니다.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의 북송문제가 불거지면서는 나도 북송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번졌습니다.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떠나온 탈북민조차 끌어안지 못하는 데 어떻게 북한 전체를 끌어 안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8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어느 탈북 모자의 죽음'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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