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그들은 왜 촛불을 들었는가

등록 2019.08.29 21:45 / 수정 2019.08.2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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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게 된 사정을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라."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는 여관마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가난한 부부에게 방을 내주지않았습니다. "우리는 젊은 부부 앞에서 방이 없다고 말하는 베들레헴의 여관 주인처럼 되지 않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고 른 기회를 주지 않는 기성사회의 특권을 베들레헴 여관 주인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걸하게 만들고 미래를 만들어주는데 실패했습니다…"

교황은 두 해 전 말한 '행복 십계명'에서도 "젊은이들에게 고귀한 일자리를 만들어주라"고 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빈 강의실 전등 끄기를 시키면서 맞춤형 일자리라고 했던 정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우리 젊은이들을 더욱 참담한 좌절에 빠뜨리는 것은 불공평한 기회, 불공정한 경쟁입니다. 대학가에 "조국 물러가라"는 촛불의 함성이 번져가는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위선입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조국 후보자를 가리켜 '후안무치 하다'고 했습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얘기지요. 젊음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제자이자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조국 후보자는 안색이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검찰 수사를받는 지경에 이르고도 "담담히 청문회에 임하겠다"고 했습니다. 2년 전 조윤선 장관을 가리켜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느냐"며 '낯'을 말했던 일이 그래서 새삼 화제입니다.

청춘이라는 말에는 용기 희망 사랑 이상 같은 단어가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젊은이들을 들쑤시고 있는 감정은 좌절 분노 혐오 절망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거나 "청춘의 고통은 약"이라는 말은 위안이 아니라 상처를 깊게 할 뿐입니다. 이제 그들의 상처 리스트에 '조국'이라는 단어가 하나 더 붙게 됐습니다.

8월 29일 앵커의 시선은 '그들은 왜 촛불을 들었는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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