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재후 Talk] 30년 전 화성 주민들이 "경찰은 물러가라" 외친 이유는?

등록 2019.10.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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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의 백광호 역을 맡은 박노식




◆ 30년 전 화성에는 '백광호'가 있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기억나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향숙이 이뻤다" 바로 백광호입니다.

경찰은 이 장애 청년을 잡아다 지하실에서 고문을 합니다. 범인으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얼마 전 본인이 '백광호'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바로 1988년 9월 화성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잡혀 20년 가까이 구치소에서 복역한 윤 모 씨입니다. 윤 씨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는 장애인입니다.

경찰은 그 당시 '최첨단 과학 기술'이라는 체모 분석을 바탕으로 윤 씨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전문가들 의견이 "현재는 '비과학적'이라고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체포 당일 윤 씨는 경찰서에 바로 '자백'도 합니다. 그런데 윤 씨가 이 자백이 "고문으로 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하며 재심을 준비 중입니다. 이춘재가 8차 범죄도 "내가 했다"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16살 명 모 군 고문치사 사건 / 조선일보DB


◆ 윤 씨 잡은 경찰, 같은 해 '고문치사' 연루돼 직위해제

윤 씨를 잡은 수사팀장은 8개월 전 직위해제 됐던 경찰입니다. 16살 고등학생 명 모 군을 포승줄로 묶고 때리다 결국 사망케 한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입니다.

1988년 1월 수원 화서역 앞에서 여고생이 사망한 채 발견됩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범행 수법이 매우 유사했습니다.

경찰은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나타난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화서역 앞에 잠복합니다. 그리고 범행 현장을 수상하게 돌아다니는 명 군을 잡아다 바로 경찰서 지하실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자백'을 받아냅니다.

하지만 이후 명 군은 현장검증에서 피해자의 시계를 묻은 곳을 3시간 동안 찾지 못합니다.

명 군은 현장 검증 중에 도망가려 했고 그날 다시 경찰서 지하실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다시 고문을 받다 뇌사 상태에 빠집니다.

명 군은 입원 37일 만에 안구와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당시 수사팀장은 이 사건 책임을 물어 직위 해제됐습니다.

부하 3명은 재판으로 넘겨져 징역 6년에서 1년까지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수사팀장이 3개월 후에 다시 화성 수사팀에 복귀합니다.

그리고 8차 사건에 투입 돼 윤 씨의 자백을 받아냅니다. 해당 팀장은 "증거가 있어서 고문은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체포된 당일 바로 자백한 것을 보면 고문은 없었다"고 강조합니다.

명 군을 사망케 만든 여고생 피살 건은 끝내 미제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이춘재는 이 사건을 "내가 했다"라고 자백합니다.

"바른 말 안한다고 때렸다"


◆ 이춘재 말고 '빽'없고 힘없는 사람만 잡던 경찰

과거 명 군이 살던 집 근처에서 어렵사리 이웃 주민을 만났습니다. 주민은 아직도 "그 당시 경찰을 생각하면 무섭다"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이 주민에 따르면 명 군 가족은 당시 수원으로 이사 온 지 2달도 안되었다고 합니다. "전라도에서 이사 온 가족인데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어 어렵게 생활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경찰이 화성 사건 용의선상에 올린 사람들 다수는 '외지인' '장애인' 등 소위 '빽' 없고 힘없는 주민들이었습니다.

수원에서는 1989년 여고생이 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춘재는 이 사건 역시 "자신이 했다"라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이 벌어진 동네 주민들 말을 들어보면 경찰은 동네 '불량 학생'들을 의심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보기에 "범행이 너무 잔인해 학생들이 한 것 같지 않았음"에도 경찰들은 만만한 학생들만 불러 수사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범인을 잡겠다고 당시 피해 여고생이 다녔던 여고에 '수사본부'를 차렸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뭐 하는 짓"이냐며 항의했지만 한동안 '여고 수사본부'는 운영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강도 예비 혐의로 전과까지 생긴 이춘재를 3번이나 불러 조사했지만 놓쳤습니다.

30년 전 화성의 악마 '그놈' / 연합뉴스


◆ "피해자의 원혼" 이춘재 말고 경찰이 달래야

지난달 19일 첫 브리핑 때 배용주 경기 남부지방경찰청장은 "피해자 원혼들의 도움"으로 이춘재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수사를 이어가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춘재를 조사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당시 '왜' 못 잡았냐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경찰이 화성에서 자행한 '인권 탄압' 의혹에 대한 반성도 해야 합니다.

1990년 11월 9차 사건 용의자로 조사 받다 기차에 뛰어들어 죽은 차 모 씨의 원혼도 달래야 합니다.

선배들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뢰받는 경찰이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30년 전 한 신문에는 이런 시민의 말이 보도됐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우리 화성시민을 괴롭히지 말고 물러가라" 경찰은 당시 화성에서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주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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