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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조국이 남긴 것

등록 2019.10.14 21:49 / 수정 2019.10.1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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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옛 선비 차림을 한 행렬이 서울서 안동까지 320km를 열사흘 동안 걸었습니다. 450년 전 퇴계 이황이 관직을 내려놓고 돌아섰던 마지막 귀향길을 재현한 겁니다. 퇴계는 임금에게 벼슬을 사양하는 상소만 일흔세 번을 쓴 끝에 뜻을 이뤘습니다. 그의 소원은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 이었습니다.

김병일 안동 도산서원 원장은 퇴계의 길 8백리가 "구도의 길이었다"고 했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붙들어도 벼슬을 마다하고 수양과 후학 양성에 힘쓴 '물러남의 정치'를 보여줬다"고 했지요. 퇴계 같은 큰 선비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 과하긴 합니다만 오늘에야 물러난 조국을 보며 퇴계의 호둔을 떠올렸습니다. 호둔이란 때를 잘 알아 스스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군자는 호둔하기에 명예롭고 아름답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해 추하다'고 했지요.

법무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두달 하고도 닷새가 더 지나는 동안 조국은 물러날 때를 날마다 흘려 보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겠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면서 젊은이는 물론 국민의 가슴에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대못을 박았습니다. 기득권의 일그러진 초상을 깊숙이 새겼습니다.

오만한 권력은 인사청문회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대통령은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며 정말 나쁜 선례를 남겼습니다. 집권세력은 그의 진퇴에 정권의 명운이라도 걸린 듯 나라를 둘로 쪼개는 극단의 정치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길 수도 없고 이기면 안 되는 싸움을 이겨보려고 했습니다.

결국 그를 끌어내린 것은 국민이고 민심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최저치를 갱신하는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에 담긴 민심 말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물러났다고 해서 가족은 물론 그에게 얽힌 의혹이 없던 일이 돼서는 안 됩니다. 많은 국민이 조국 일가의 불공정 부정의가 응당한 대가를 치르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조국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국내외 정책들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많은 국민이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조국의 위선이 국가와 국민에게 꼭 백해무익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겁니다.

10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조국이 남긴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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