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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다시 벼랑끝으로

등록 2019.12.09 21:47 / 수정 2019.12.0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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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통과 권총을 들고 헛간으로 가는 이 남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헛간 벽을 향해 총을 쏘더니 총탄자국이 모인 곳에 과녁을 그립니다. 그러고는 명사수라도 된 듯 당당하게 돌아섭니다.

심리학에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 라는 게 있습니다. 어설픈 텍사스 카우보이가 총잡이 행세를 한다는 우화에서 따온 용어지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착각을 가리킵니다.

보통사람이야 흔히 그렇다지만 나라의 안위가 걸린 문제도 그런 식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한반도 상황을 보면 지난 2년 비핵화 줄다리기에서 세 당사자가 각기 품어온 착각과 동상이몽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우선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준비에 나섬으로써 비핵화가 기만적 협상전술임을 스스로 실토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년 전 자식까지 들먹이며 "내 아이들이 핵을 이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에는 "아버지가 유일한 안전보장 수단은 무기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고 썼습니다. 트럼프는 그런 친서를 받고도 "김정은과 좋은 관계"라고 자랑해왔습니다. "내가 아니면 북한과 큰 전쟁을 하고 있을 것" 이라고 뽐냈습니다.

그러더니 이틀 전 북한이 "트럼프 재선용 시간 벌기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하자 조금 다급해진 듯합니다.

"그(김정은)가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핵화 협상을 재선 카드로 쓰고 있다는 속내를 인정해버린 겁니다. 북한은 그런 트럼프를 한껏 밀어붙여 양보를 얻어내려 하고, 결국 트럼프도 김정은이 재선에 재를 뿌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정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북미 사이는 싱가포르회담 이전으로 돌아가기 직전입니다.

그리고 청와대는 한미 정상이 통화에서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밝혔습니다. '엄중하다'는 표현,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이제 정부는 남북관계와 비핵화에 품어온 믿음과 희망이 허망한 거품이 될지도 모를 기로에 섰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텍사스 카우보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12월 9일 앵커의 시선은 '다시 벼랑끝으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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