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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재후 Talk] '애물단지' 태양광 폐패널…재활용 어렵자 아프리카에 기부?

등록 2019.12.16 10:46 / 수정 2019.12.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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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어 있는 태양광 발전 시설 패널들 / 조선일보DB

"마음만 먹으면 하루 2t씩 재활용할 수 있어요." 충북 진천의 한 태양광 폐패널 재활용 업체. 공장 한편에는 다 쓴 태양광 패널 1t 가량이 쌓여있었다. 깨지거나 먼지가 내려앉은 태양광 패널들. 한눈에도 낡아 보이는 패널들은 대부분 15년에서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30년간 전기·전자제품 폐기물 처리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 업체는 최근 태양광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3년간의 연구 끝에 지난 4월 태양광 폐패널을 재활용하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공장에는 아직 비닐도 걷지 않은 새 설비들로 가득했다. 태양광 패널을 성분대로 분리하는 기계들이다. 태양광 패널은 크게 5개 층으로 구성돼 있고, 여러 가지 성분이 섞여있다. 모듈 표면의 유리와 실리콘 웨이퍼에 은을 첨가한 태양전지, 보호용 에바 필름과 백시트 등이다. 여기에서 은과 구리, 주석 등 그야말로 '돈이 되는' 성분들을 분리한다.

업체 관계자는 "열 처리를 통해 모듈에 포함돼 있는 웨이퍼를 분리해내고, 이후 습식 공정, 화학적 공정을 거쳐 웨이퍼와 은, 구리를 추출해내는 기술"이라고 했다. 단순 파·분쇄를 통한 분리가 아닌, 열과 반응을 이용한 공정은 업계에서 독보적이라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가장 돈이 되는 건 단연 은이라고 한다. 하지만 태양광 모듈에서 추출할 수 있는 은은 1% 미만에 불과하다. 한때는 실리콘 웨이퍼도 돈이 되는 성분이었지만, 요즘은 단가가 떨어져 고민이라고 업체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비 등 4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기술개발을 진행한 이 업체는 비교적 돈 문제에서 자유롭다. 비용이 많이 드는 철거와 운반 단계는 제외하고 성분 분리 기술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관계자는 충분히 수익성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공정 단계를 줄여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고민이 한창이다.

■ 급증하는 태양광 폐패널…뒤처리는?

태양광 패널의 수명은 15년에서 25년가량이다. 아직 태양광 폐패널 발생량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 200여 t 정도로 추정되는 수준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설치가 늘어난 태양광 패널의 교체 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재생에너지'를 밀어붙이는 현 정부 들어선 태양광 패널 설치가 급증하고 있어 20년 뒤에는 폐패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해 5월 낸 '태양광 폐패널의 관리 실태조사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는 올해 198t으로 추정된 폐패널 배출량이 내후년엔 805t, 2023년 9665t, 2030년 2만 935t, 2045년엔 17만 6217t까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내후년 준공 목표로 진천에 태양광재활용센터를 짓고는 있다. 연간 처리량은 3600t 수준에 불과하다. 산업부는 '70%를 재사용'을 전제로, 재활용센터에서 처리가 가능할 거란 관측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패널의 수명이 다하면 발전 효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재사용은 쉽지 않은 선택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간 전문 처리업체의 역할이 절실한 시점이다. 현재 국내에 태양광 폐패널을 재활용하는 기술을 가진 곳은 위 업체를 포함해 단 3곳뿐이다. 대부분 기술개발 단계이고 실적을 내는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실적은 14t 가량. 지금은 들어오는 물량이 많지 않고 기술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도기'라고 한다.

붕괴된 태양광 패널들이 현장에 그대로 방치돼 있다 / 조선일보DB


■ 그 많은 폐패널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보고서대로라면 올해까지 폐패널 누적 발생량은 428t은 돼야 하는 셈인데…. 지금 발생하고 있는 폐패널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안타깝게도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윤상직(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누적 추정량 428t 중 실제 처리가 확인된 건 환경부의 폐기물 처리 시스템인 '올바로시스템'에 등록된 31.9t이 전부다.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사라진 패널들의 행방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일부 사업자들에 의해 아프리카로 보내진단 것이다. '기부' 혹은 '할인'이란 명목이다. 전언에 따르면 '기부받은 자'들은 몹시도 불쾌해했다고 한다. 선의로 포장해 처치 불가능한 쓰레기를 투척한 걸 그들이라고 왜 몰랐겠는가. 한 교수는 "윤리적으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국내 태양광 설비의 경우 사용 후 처리 규정이 미흡하다. '폐기물관리법'에 폐패널 처리 관련 규정이 있긴 하다. 하지만 5t 미만의 폐패널은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지자체가 관리하는데, 신고 의무는 없다. 통계관리에 구멍이 뚫린 이유다. 때문에 폐패널은 그대로 방치되거나 매립되고 있는 것이다. 위 사례처럼 개발도상국으로 '기증'되거나 싼값에 팔려나가기도 한다. 그야말로 '사각지대'다.

정부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2년까지 태양광 폐패널 회수·보관 체계를 만들고, 2023년까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 폐패널 재활용 돈 될까?…"이러지도 저러지도"

문제는 경제성이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엔 '일본에서 실시한 태양광 폐패널의 철거·운반·처리에 관한 비용편익 분석'이 첨부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0만t의 태양광 폐패널을 재활용할 경우 편익은 67억 4700만 엔, 비용은 390억 5500만 엔이 발생한다. 1000원 투자하면 173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나마 매립보다는 재활용의 편익이 높다는 게 이 분석의 결론이었다.

우리나라는 대량의 폐패널을 매립할 만한 조건도 되지 않는 데다, 환경오염 물질 때문에 이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재활용 말고는 뾰족한 대안도 없다. 재활용할 경우 돈은 얼마나 들까?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연혜(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위 분석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해봤다. 2045년까지 발생하는 폐패널 누적 발생량 155만t을 재활용하는데 발생하는 비용은 6조 535억 원, 이로 인한 편익은 1조 482억 원으로 추정된다. 5조 원이 고스란히 재활용에 들어가는 셈이다.

폐패널 재활용을 경제성의 관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폐기물 처리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사회적 비용이 너무도 크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애초 태양광 발전 도입 단계에서부터 이를 고려해 설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보급에만 급급한 결과"…요람에서 무덤까지 '돈 덩어리'

사후 처리에 이렇게 막대한 돈이 들 거란 걸 과연 몰랐을까? 전문가들은 애초 태양광을 도입하던 20년 전부터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우리가 태양광을 도입할 당시, 이미 외국에선 대부분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는 기업에 책임을 묻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었다"며 "폐기물 처리 방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보급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생긴 결과"라고 지적했다.

태양광 도입을 위해 이미 막대한 보조금이 투입됐다. 더욱이 2023년부터 생산자에게 폐패널 처리 부담을 지우게 되면 가뜩이나 비싼 태양광 발전 단가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이 직접 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생산자의 부담은 사실상 상품 가격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결국 소비자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최연혜 의원은 "태양광 패널을 재활용하는데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도 결국 전기 요금 인상이란 형태로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재생에너지를 무작정 늘리지 말자는 게 아니다. 기술이 진일보하면 태양광 패널 처리 비용도 낮아질 거란 희망 섞인 기대도 있다. 문제는 속도다. 지금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최근 2년간의 태양광 속도전은 이 같은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경제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처리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후에 속도를 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탄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막대한 돈이 드는 태양광. 참 손이 많이 가는 아이인 건 분명해 보인다. / 임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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