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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절규

등록 2020.05.2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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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길…"

미스터 트롯의 정동원군이 구성지게 부른 '보릿고개'에 많은 분이 가슴 저려했지요. 열세살 동원군에게 모진 배고픔의 한을 알려주신 분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참꽃 진달래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곤 했습니다.

"진달래꽃은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 잎 두 잎 따먹은 진달래에 취해 쑥 바구니 옆에 낀 채 잠들던 순이…"

소년은 개울물로 배를 채우며 이십 리를 걸어 학교 다니기가 더는 싫었습니다. 어머니가 달랬습니다.

"학교 갔다 오면 하얀 쌀밥을 차려주마…"

소년이 고봉밥만 떠올리며 집에 오니 부엌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새나왔습니다. 종일 헤매도 쌀을 못 구한 어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울고 계셨습니다. 어느 빈민운동가의 어릴 적 사연입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일본군에 끌려간 때는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해 너나없이 굶주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엄마가 참외를 감춰서 '수야, 이리 온나' 해가지고 부엌 정자(정주)에 가서 먹이고 했습니다…."

그 열네 살 딸이 군홧발에 차이고 전기고문을 당하며 처참한 일을 겪을 때 부른 이름이 엄마였습니다. 할머니는 "그 소리가 지금도 머리에서 귀에서 들린다"며 울먹였습니다. 위안부 운동 30년이 지나도록 무엇이 해결됐느냐는 절절한 외침입니다. 할머니는 달변은 아니지만 또렷한 기억으로 못다했던 얘기를 토해냈습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몇 사람이 받아먹었다"는 속담 한 마디에 모든 것을 담아냈습니다. 피해자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위안부 운동과 두 나라 학생 교류 제안은 묵직한 공감과 울림을 던졌습니다.

이런 할머니를 두고 윤미향 당선인 쪽에서는 "기억이 왜곡됐다"며 정신이 흐린 노인으로 몰아세웠습니다. "후손에게 목돈을 물려주려고 태도를 바꿨다"는 말도 나왔지요. 이제 윤 당선인과 민주당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할머니의 절규가 아직도 친일 모략극이라는 것인지부터 말입니다.

모두의 눈길이 쏠리는데도 윤 당선인은 벌써 여러 날 분명한 입장표명을 미루고 있습니다. 설마 정식 국회의원 신분이 되어서 불체포 특권의 장막 뒤로 숨고자 하는 건 아니겠지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했습니다. 이젠 30년 위안부 활동의 모든 것을 걸고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서 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5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절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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