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가슴으로 낳은 자식

등록 2020.06.05 21:51 / 수정 2020.06.05 21:56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2013년 여덟 살 어린이가 장 파열로 숨졌습니다. 법원은 "인형을 뺏으려다 여동생 배를 발로 찼다"고 진술한 열두 살 언니를 소년원으로 보냈습니다. 새엄마는 다른 학대혐의가 드러나 구속됐습니다. 그런데 소녀가 계속 새엄마를 감싸며 선처를 탄원했습니다. 변호인이 심리진단을 받게 했더니 인질이 인질범을 옹호하는 스톡홀름 증후군 증상이었습니다. 소녀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새엄마가 배를 여러 차례 짓밟아 실신한 동생을 이틀 동안 방치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소녀는 거짓 자백을 하라는 새엄마의 강요를 거부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 끔찍한 사건에는 계모라는 이름이 붙어 다녔습니다.

석 달 뒤 일어난 비슷한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친부모든 의붓부모든 착한 부모, 나쁜 부모가 있기 마련입니다. 실제 학대 가해자는 이렇게 친부모가 압도적입니다. 전체 친부모 숫자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계모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는 사건이 모두의 가슴을 짓누릅니다. 여행가방에 일곱 시간을 갇혔던 아홉 살 어린이가 끝내 숨졌습니다. 계모는 높이 70cm 가방에 아이를 가두고 세 시간 외출했다가 더 작은 가방으로 옮겨 가뒀다고 합니다. 이 아이 역시 한 달 전 상처가 발견돼 조사를 했지만 부모를 좋게 이야기해서 넘어갔다고 합니다. 좀 더 세심하게 살폈더라면 참극을 막을 기회가 있었던 겁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처럼 잘 키우겠다는 입양 부모의 마음을 가리키지만 의붓 부모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링컨 대통령, 정인보 선생, 이범석 장군… 새어머니의 헌신을 빼고는 말할 수 없는 큰 사람이 숱합니다. 민족시인 김소월은 남편 잃고 재혼하는 여인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봤습니다.

"홀로된 그 여자. 근일에 와서는 후살이 간다 하여라. 그렇지 않으랴. 그 사람 떠나서 이제 십년…"

그런데 세상이 어찌 이리 험해졌을까요? 이제 겨우 아홉해를 살다 간 그 어린아이가 겪었을 공포, 분노, 절망, 슬픔의 깊이는 또 얼마나 깊었을까요? 그리고 이 절망적 비극에 우리 모두는 책임이 없을까요? 그래서 뒤늦게나마 이렇게 작은 목소리로 고백합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6월 5일 앵커의 시선은 '가슴으로 낳은 자식'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