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허탈합니다

등록 2020.07.02 21:50 / 수정 2020.07.02 22:20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어느 농부에게 악마의 대리인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당신이 하루 종일 걸어갔다 온 땅을 모두 주겠소…"

농부는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얻으려고 죽을 힘을 다해 뛰다 숨을 거둡니다. 결국 그가 얻은 땅은, 육신을 눕힐 조금만 땅뙈기였지요.

톨스토이가 쓴 우화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입니다. 박목월 시인이 묏자리를 보러 용인에 갔습니다. 산기슭에서 소개업자가 말합니다.

"한 평 3천원이면 싸지요."

시인은 돌아오는 버스에서 죽음을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미 토지는, 이승의 것이 아니었다… 차창의 스크린에 울부짖는 것은 바람 소리도 짐승 소리도 아니었다…"

지하의 시인이 지금 용인은 커녕 온 수도권에 번져가는 집값, 땅값의 도깨비불을 본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김현미 국토부장관이 "지금까지 부동산 정책은 다 작동하고 있다"며 정책 실패를 부인했습니다. 그러자 경실련 간부가 "잠꼬대 같은 이야기"라고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경실련은 "청와대 참모진이 집값 상승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었다"며 다주택 참모 교체도 요구했습니다.

'경제 정의'를 추구하는 대표적 시민단체가 역시 '경제 정의'를 지향한다는 정부를 정면 비판하는 역설이 벌어진 겁니다.

노무현 정부 홍보수석을 지낸 친노 인사, 조기숙 교수도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처럼 집값이 곧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라고 했다. 잘못된 신화를 학습해 큰일 나겠다 싶었다"고 했지요.

경실련 집계를 보면 문재인 정부 3년 사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52퍼센트 올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반 상승률 26퍼센트의 두 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다주택 고위 공직자들이 집을 움켜지고 있는 건 설마 앞으로도 더 오를 것 같아서 여는 아니겠지요?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에게 집을 팔라고 엄포를 놓았던 노영민 비서실장이 이제껏 버티다가 반포 집은 그냥두고 청주 집을 내 놨다는 소식 역시 씁쓸합니다.

'망매해갈'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일을 환상으로 대신한다'는 뜻입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갈증을 호소하는 병사들에게 '저 앞에 시디 신 매실 숲이 있다'고 하자 병사들 입에 침이 돌았다는 얘기입니다. 

"지난번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망매해갈'을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은 언제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요? 환상으로라도 집 없는 설움을 달래려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7월 2일 앵커의 시선은 '허탈합니다'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