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박원순 시장은 80년대 정국을 뒤흔들었던 유명한 인권 사건을 잇따라 맡으면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시민운동가로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참여연대, 민변 설립을 주도한 대표적인 진보 인사였습니다. 2011년 서울시장이 되면서 정치권에 들어와 '최장수 서울시장'이라는 기록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이렇게 허무하고 쓸쓸했습니다.
오늘의 포커스는 '박원순의 삶'에 맞췄습니다.
[리포트]
변호사 박원순. 1986년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 이듬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변론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듭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관련 소송인 서울대 우조교 사건을 맡으며 여성 인권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주목받았죠.
당시 직장내 성희롱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사회에 심어줬고, 6년의 긴 법정 공방 끝에 승소했습니다.
1994년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며 시민운동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낙천, 낙선 운동을 벌인 2000년 총선은 시민운동가로서 정점을 찍도록 했습니다.
박원순 / 당시 변호사 (2000년)
"각종 판례라든지 법률 문안, 또 그동안 우리 시민사회단체들이"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를 거쳐 2011년 당시 안철수 교수의 양보로 첫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이 탄생했습니다.
박원순 / 서울시장 (2011년)
"그때는 야권 단일 후보, 시민후보 그랬는데 이제는 시장 박원순 인사드립니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아들의 병역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박원순 / 서울시장 (2012년)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 황당한 일이 있느냐고. 세상사람들이 다 저를 믿어줄 줄 알았습니다"
재선에 성공한 뒤 대권 경선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부족한 당내기반을 절감하며 중도 포기했습니다.
박원순 / 서울시장 (2017년)
"저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찰과 단련의 계기로 삼겠습니다"
역대 최장수인 3선 서울 시장이라는 경력에, 서울형 그린 뉴딜 등 각종 정책을 내세워 다음을 준비하던 박원순 시장.
하지만 그의 마지막 걸음은 끝내 뻗지 못했습니다.
뉴스9 포커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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