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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수돗물 벌레가 무해하다니요

등록 2020.07.21 21:50 / 수정 2020.07.2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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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시와 소설로 소외와 불안을 말했던 이상. 하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서정적 수필도 한 편 남겼습니다. 폐결핵을 앓던 그가 평북 성천 산골에 요양 갔다가 쓴 '산촌여정' 입니다.

"목이 마릅니다. 자리물. 심해처럼 가라앉은 냉수를 마십니다. 석영질 광석 냄새가 나면서 폐부에 한란계 같은 길을 느낍니다"

요즘 말로 미네랄이 풍부한 자리끼가 수은주 내려가듯 폐부를 타고 내린다는 얘기입니다.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쏴아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백년 전까지 서울에서 샘물을 져 날랐던 물장수들이 있었습니다. 억척스러운 평북 북청 사람들이 요즘으로 치면 생수 택배시장을 장악했지요. 북청 물장수가 백년 넘게 번창했을 만큼 서울 샘물이 깨끗했던 겁니다.

그리고 다시 백년이 흐른 21세기에 집집마다 수돗물을 겁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집 수도꼭지에선 벌레가 안 나오는지 가슴 졸여야 하는 황당한 사태입니다. 인천에서 첫 깔따구 유충이 신고된 게 지난 9일입니다. 그 뒤로 인천에서만 2백건 가까운 신고가 쏟아지도록 당국은 "인체에 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눈 딱 감고 마시라는 건가요. 그러더니 오늘에야 환경부가 전국 정수장 일곱 곳에서 유충이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수돗물은 물 감별사들이 심사하는 이 국제 물맛대회에서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미국 열두 개 주와 아홉 나라가 참가한 2012년 대회에서 청주 정수장 물이 수돗물 7위에 오른 겁니다. 서울시 수돗물 아리수와 생수, 정수기 물을 비교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시민들은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요.

그런데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7퍼센트 밖에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 불신 일 겁니다. 인천시는 지난해 붉은 수돗물 신고가 밀려드는데도 수질에 문제가 없다고 버티다 공무원들이 수질검사 수치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유충 사태가 터지자 또다시 "무해하다"며 늑장을 부렸습니다. 이러니 누가 맘 편히 수돗물을 마시겠습니까.

옛말에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습니다만 수돗물에 관한 한 그 반대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7월 21일 앵커의 시선은 '수돗물 벌레가 무해하다니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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