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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걱정스럽습니다

등록 2020.08.12 21:47 / 수정 2020.08.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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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중궁궐 처마 끝에 한 맺힌 매듭 엮어…"

경복궁 광화문 들어서서 큰 문만 여섯, 작은 문 둘을 지나야 닿는, 깊고 은밀한 뒤뜰에 굴뚝 넷이 서 있습니다. 붉은 벽돌을 육각형으로 쌓아 지붕을 얹고, 온갖 꽃과 나무, 상서로운 무늬를 새겨 여간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보물 811호 아미산 굴뚝입니다.

꽃은 물론 굴뚝까지 정성껏 꾸민 뒤뜰은 이곳 교태전에 살던 왕비를 위한 배려입니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 갇히듯 지내는 왕비가 뒤뜰을 내다보며 외로움을 달래라는 뜻이지요.

구중궁궐 또는 구중심처는, 인의 장막에 에워싸여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조선의 명재상 이항복이 귀양 가면서 광해군을 향해 읊은 시조가 그렇습니다.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후보시절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취임하자 구중궁궐 같던 청와대를, 스스럼없는 소통의 장으로 바꾸려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참모진과 커피를 들고 산책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아니 아니… 옷 벗는 거 정도는…"

그런데 3년이 지난 요즘, 구중궁궐이라는 단어가 다시 정가에 나돌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있습니다." "최근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안정되고 있습니다."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 시장이 안정화되고…"

대통령의 낙관론과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비단 부동산 문제에 그치지 않는 듯합니다. 제대로 된 처방은 제대로 된 진단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심리학 용어에 '스톡데일 역설' 이라는 게 있습니다. 베트남전 때 미군 장교 스톡데일은 8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갇혀 관찰했더니 '곧 풀려난다'고 기대하다 좌절하기를 거듭하던 포로들이 먼저 죽었다고 했습니다.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막연한 희망에 기대다 결국 파국을 맞는다는 얘기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정치 사상가 한비자는 "군주의 근심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며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신하는 군주의 마음을 엿보며 노리게 되니 잠시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발언이 갈수록 민심과 멀어져 가는 듯하다는 걱정이 나오는 시대가 다시 이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8월 12일 앵커의 시선은 '걱정스럽습니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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