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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정훈 앵커가 고른 한마디] 당신이 검사냐?

등록 2020.10.11 19:46 / 수정 2020.10.11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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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바쿠'
"불법 대출금액! 3000억?"
"검찰입니다. 불법 대출 사건으로 수색하겠습니다."

1997년 일본의 초대형 금융비리를 파헤친 도쿄지검 특수부를 다룬 영화 '쥬바쿠'의 한 장면입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수십년 간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며 일본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으로 거듭났습니다.

"오직 증거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1976년 록히드 사건 때 다나카 전 총리를 기소하며 내놓은 이 발표문에는 특수부 검사들의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5천 억이 넘는 피해액, 3000명 가까운 피해자, 옵티머스펀드 사건을 수사하는 우리 검찰의 모습은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습니다. 남부지검의 금융범죄 전담팀은 올해 초 추미애 법무장관이 해체했고, 대신 고소사건을 다루는 중앙지검 조사1부가 이 사건을 맡았습니다. 정관계 인사 9명의 실명까지 나왔지만, 3개월째 소환도 하지 않고 있죠.

피해액이 1조6천억원이나 되는 라임사건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재판에서는 청와대 고위 인사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증언까지 나왔지만, 윤석열 총장은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했죠.

추미애 장관 아들 의혹의 무혐의 처리, 고민정 윤건영 이수진 의원의 선거법 위반 무혐의 처리. 여기에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수사도 지지부진 합니다.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말이 공염불처럼 들리게 된 건 이미 오래됐습니다. 검찰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개혁의 명분도 허울뿐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많은 국민은 지금의 검찰이 국민의 편인지, 아니면 권력의 편인지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초 조국 전 장관의 무혐의를 주장한 선배 검사에게 "당신이 검사냐"고 했다는 한 검사의 외침은 2020년 대한민국 검찰의 민낯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이 됐습니다.

윤석열 총장은 "죄를 보면 수사하는 게 검사고 난 검사를 믿는다"고 한 적이 있다죠. 하지만 추미애 장관을 앞세운 권력의 압박에 저항하지 못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한다면 윤 총장 역시 검찰 역사에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검사와의 대화 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며 검찰은 꾸짖은 바 있습니다.

"검찰의 중립은 정치인들이 검찰의 중립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검찰 스스로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검찰의 독립이라는 것은 검찰 스스로 품위를 갖고 지켜 나가십시오."

권력의 곁불을 쬐며 출세를 좇는 검사들이 득세하는 작금의 현실에 저 역시 이 한마디를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이 검사냐'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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