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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재후 Talk] '홍남기의 선물, 유척(鍮尺)' 유척정신 잊으셨습니까?

등록 2020.10.30 15:37 / 수정 2020.11.1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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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선물한 유척 실물

"암행어사 출두요!" 조선시대입니다.

마패를 당당히 내보이며 암행어사가 출두하죠. 그리고 탐관오리의 죄명을 낱낱히 고하며 벌을 내립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죠. 그런데 암행어사가 마패만 가지고 다닌 건 아닙니다. 마패와 함께 어사 발령장, 복무수칙, 그리고 유척(鍮尺)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 유척을 기획재정부 전 직원에게 선물하고 싶다고도 말했습니다. 최근의 '대주주 기준 3억 원 논란'을 보며 유척이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아자 나눔장터에 유척을 내놓았다. / 기획재정부 제공


■ 홍남기의 선물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로 가보겠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Fitch)를 연이어 만납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평가를 앞두고 만남을 가진 겁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선물을 하나 건넵니다. 바로 '유척(鍮尺)'입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표준자를 뜻합니다. 쉽게 20㎝ 남짓한 4면의 놋쇠 막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무게는 360g 정도로 한손으로 들면 묵직하다고 느껴집니다. 홍 부총리는 기재부 모범직원을 표창할 때도 이 유척을 선물로 줬고, 한 나눔장터에도 부총리 이름으로 유척을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유척이 도대체 뭐길래 그랬을까요.


■ 정확·공정·균형

유척은 조선시대 도량형의 표준이었습니다. 유척의 각 면에는 5가지 용도의 척(尺)이 새겨져있습니다. 악기를 제조할 때 썼던 황종척(黃鍾尺), 포목의 길이를 잴 때 썼던 포백척(布帛尺), 제사물품을 만들 때 썼던 예기척(禮器尺), 토지와 도로를 잴 때 썼던 주척(周尺), 그리고 곡식을 잴 때 썼던 영조척(營造尺)이 그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건 바로 영조척입니다.

당시 일부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에게 구휼미를 나줘줄 때는 정해진 양보다 작은 됫박을 써서 쌀을 축적했고, 곡식으로 세금으로 걷을 때는 정해진 양보다 큰 됫박을 써서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그래서 암행어사는 정해진 크기의 됫박을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유척, 그 중에서도 영조척을 사용해서 됫박의 크기를 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는 곧 정확, 공정, 균형을 상징합니다. 홍 부총리가 국제신평사에게 이 유척을 선물했던 것도 신용평가를 공정하게 해달라는 뜻이 담겼을 겁니다.

지난 28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9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조신일보DB


■ 유척정신

홍남기 부총리는 유척정신을 강조합니다. 기획재정부 블로그에 글을 기고하면서 "조세의 경우 그 규모를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를 부과·징수함에 있어서도 공정·형평의 가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조세와 예산 등 국가재정을 운용할 때 '유척정신'이 커다란 준거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 대주주의 기준을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면서 세수가 얼마나 늘어날지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고, 왜 3억 원인지도 그 근거에 대해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외국인의 경우 현재 대주주의 기준이 25%에 달합니다. 2018년에 이를 5%로 낮추려고 했지만 "셀코리아" 우려와 외국인의 반발로 철회한 적이 있습니다. 홍 부총리가 강조한 유척정신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이를 반증하듯 국민들의 불만도 극에 달해 부총리 해임청원이 20만 명을 넘겨 청와대의 공식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당정청 워크숍에서 발언하고 있다. / 조선일보DB

 
■ 공은 국회로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정부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보완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르면 이번 주말 사이 당정 협의를 거쳐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쯤에서 다시 홍 부총리가 유척을 꺼내봤으면 합니다. 유척은 백성으로부터 과도한 조세를 걷어들인 탐관오리를 응징해 조세감시의 기준이 됐습니다. 암행어사가 유척을 꺼내들어 정확하고 공정하게 조세의 크기를 재 백성을 보호했던 유척정신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을 겁니다. / 송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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