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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개와 늑대의 시간

등록 2020.11.27 21:51 / 수정 2020.11.30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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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서녘 하늘에 불을 붙였나,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나"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붉게 타는 노을도 스러지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사진가들은 자리를 뜨지 않습니다.

해 지고 이삼십 분, 마법처럼 신비롭게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 시간, '매직 아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지요. 빛과 어둠이 뒤섞여 낮도 밤도 아닌, 이 모호한 경계의 시간을,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저 언덕 너머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짐승이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한 정치학자가 선거를 가리켜 '개와 늑대의 정치' 라고 했습니다. 선거로 선택받은 선량한 '개'들은 선거 이전의 민의를 배신하고, 광포한 '늑대'로 변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겁니다.

코로나가 무섭게 번지면서 지금 우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 앞에 섰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대유행, 이른바 팬데믹으로 빠져드느냐, 아니면 가까스로 그 깊은 수렁을 면하느냐가 곧 판가름 나는 순간입니다.

다급해진 정부는 연일 국민에게 일상을 포기하고 집 안에 머물러 달라고 종용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단호한 절제와 원칙적 대응을 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계속 머뭇거리고 다른 셈법에 한눈을 팔다간, 이 모호한 시간은 허망하게 끝나고 암흑이 세상을 삼키고 말 겁니다.

그렇다면 군사 독재시대에도 없었던 검찰총장 직무 박탈이라는 상황이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국민이 어렵게 싸우고 희생해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탑을 향해 어슬렁대며 다가오는 그 짐승은 개인가요, 늑대인가요. 지금 이 혼돈의 시간은, 곧 천지가 밝아올 미명의 시간일까요, 아니면 어둠의 시간일까요.

정치학자 함규진 교수는 '개인 줄 알고 뽑았더니 늑대였던 선거들'을 들여다보며 교훈을 정리했습니다. 그중에 몇을 봅니다.

"열성적 지지자는 정치인에게 그 어떤 적보다 치명적이다" "민주주의의 의의는 결과가 아니라 합의하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결정을 타인에게 미루면 괴물이 선택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닥친 것이 혹시나 야만의 시간은 아닐까요.

수십만 군중이 촛불을 들고 엄동설한의 거 리로 나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외쳤던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었을까요? 안개 너머 아득히 보였던, 그래서 설마 설마 했던 그 미래가 이제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지만 말이지요.

11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개와 늑대의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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