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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취재후 Talk] 재계 3·4세들의 통큰 M&A…'아버지 후광' 벗어나 '내 길' 찾을까

등록 2020.12.15 17:29 / 수정 2020.12.1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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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아버지인 故정주영 명예회장의 눈에 든 건 자동차가 아닌 컨테이너 덕분이었습니다. 1976년 울산 매암동에 공장을 짓고, 컨테이너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1970년대 수출 바람을 타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40%나 됐다고 합니다. 현대그룹 최초의 세계 1위 상품이었습니다. 포니 승용차 한 대를 2000달러에 수출하던 시절에 20피트 짜리 컨테이너 한 개가 비슷한 값이었다고 하니 수익성도 좋았습니다.

이 컨테이너를 만들던 회사 이름은 '현대정공', 지금의 현대모비스 입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컨테이너 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1988년에는 완성차 제작에 도전했습니다. 사실상 첫째 노릇을 했던 둘째 아들이 자동차로 사업을 넓혀나가자, 故정주영 명예회장도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 합니다. 현대정공은 대부분의 기술을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가져오긴 했지만, 마침내 1991년 갤로퍼를 만들어 냈습니다. 다음해에는 국내 SUV 시장 점유율 1위였던 쌍용자동차 코란도를 제쳤습니다.

1991년 갤로퍼 1호차 출고식 현장 모습 / 출처 현대모비스



■ 정의선 회장, 사재 털어 로봇 회사 인수


올해 10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정몽구 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현대차는 지난 11일 대규모 M&A(인수합병)를 발표했습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라는 로봇 개발 업체를 인수하는 계약입니다. 인수 금액은 8억8000만 달러, 우리돈 9588억 원입니다.

정의선 회장은 사재를 들여 주요 주주로 직접 참여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가진 이 회사 지분 중 80%를 인수하기로 했는데, 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정의선 회장이 함께 투자 합니다. 지분 비율은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정의선 회장 20% 입니다. 괜한 의미 부여일지 몰라도 정의선 회장 지분율이 아버지가 만들어 성공 신화를 쓴 현대모비스의 지분율과 같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로봇을 연구하고 만든다는 게 낯설긴 합니다.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의 50%는 자동차, 30%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20%는 로보틱스가 맡게 될 것"이라고 했으니 그 출발점인 것 같습니다. 현대차에서도 계약 소식을 알리면서 '세계 로봇산업 시장이 2025년까지 연 평균 32% 성장할 전망'이라고 이번 M&A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 출처 보스턴다이내믹스 홈페이지


■ 배 만드는 현대중공업, 건설기계로 사업 확장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범현대家'의 M&A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건설기계 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눈앞에 둔 겁니다. 아직 정확한 매각가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소 8000억 원에서 최대 1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거래가 완료되면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 정유와 더불어 건설기계 부문을 새로운 성장 발판으로 마련하게 됩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새로운 사업을 확장한다는 소식에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주목 받았습니다. 정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지주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아들 입니다. 정몽준 이사장은 일찌감치 정치활동을 시작해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겼습니다. 반면 정기선 부사장은 2009년 대리로 입사해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습니다. 정 부사장은 올해 사장 승진인사에서 빠졌습니다. 업계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 인수가 마무리 되면 이 부문 사장으로 신사업을 함께 이끌게 될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 출처 두산인프라코어 홈페이지


■ 재계 3·4세의 잇딴 M&A…나만의 OOO 만들까

최근 재계 3·4세들이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신사업에 진출할 때 회사를 새로 만들기보다 M&A로 기반을 다집니다.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 기업을 사서 성과를 낼수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출발선을 앞당기는 효과도 있습니다. 물론 투자를 결정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회삿돈이 아니라 사재를 털어야 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故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사재를 털어 기업을 인수한 적이 있습니다. 1974년에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이 당시 반도체 사업은 '유망 업종'이기 보다 모두가 부정적으로 본 '기피 업종'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주변의 반대가 심해 직접 나섰다고 합니다.

어떤 기업을 얼마에 샀는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3·4세 기업인들의 성공은 점차 숫자로 나타날 겁니다. 그 회사가 앞으로 어떻게 커 나가는지 재무제표에 나온 숫자가 말할 겁니다. 기대 이상의 숫자가 나온다면 '이건희의 삼성전자', '정몽구의 현대자동차'처럼 누군가의 이름이 고유명사처럼 뒤따르겠죠. 인수 기업이 어떻게 자랄지 우리도 계속 지켜볼 겁니다. / 지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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