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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가을 가고 겨울

  • 등록: 2020.12.17 21:49

  • 수정: 2020.12.17 21:56

처절하도록 아름다운 영화 '패왕별희' 입니다. 중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넘나들던 두 경극 배우는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스러집니다.

"하늘에서 재앙이 내린다고? 아니야 틀렸어!"

문화혁명이 끝나고, 증오의 피바람에 앞장섰던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이 법정에 섰습니다. 4인방에게 마오의 과오를 덮어씌우려 했던 재판은, 장칭의 이 최후진술로 어긋나버립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마오가 시킨 것이었다"

시인이 칼끝으로 사과 한 조각을 찍어 입에 넣습니다. 그러자 언니가 말립니다.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시인은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 아픈 일을 당하겠지…"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새벽에 결정된 윤석열 총장 징계를 저녁에 재가했습니다. 당일에 이뤄진 '속전 속결재' 입니다.

말을 아끼며 뒤에 물러나 있던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면에 나선 형국입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사의를 표명한 추미애 장관에게 "임무를 완수해줘서 특별히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추 장관의 역할이 끝났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반면 윤 총장은 대통령이 재가한 징계에 법적으로 맞섰습니다. 청와대는 대통령 재량의 여지가 없었다며 거리를 두고 싶어 하지만 어쨌든 이제 구도는 대통령 대 윤석열 구도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추 장관의 전격적인 사의는 다소 뜻밖이었습니다. 추 장관은 그제 명시의 한 구절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를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새 봄을 대비해 단단히 겨울나기를 하겠다는 각오" 라고 썼습니다.

단단한 겨울나기를 준비하겠다던 추장관이 어제는 또 다른 시를 인용하며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꿈꿨다"고 했습니다.

하루 사이 '강철 무지개'에서 '산산조각'으로 바뀐 그 속마음이 자못 궁금해집니다. 추 장관은 자신의 처지를 '토사구팽'이라고 느낄까요, 아니면 영광스런 퇴진이라고 받아들일까요?

지난 가을 옛 서울시청 글판에 걸린 공모 당선작입니다. "가을님이 보름달님을 좋아합니다" 우연하게도 가을 '추'자와 영어 '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 공교롭게도 어제 이 글은, 게시기간을 마치고 내려졌습니다.

12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가을 가고 겨울'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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