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어릴 적 눈 퍼붓는 성탄절에, 호되게 앓아 누웠습니다. 그 밤, 아버지가 눈보라를 헤치고 붉은 산수유를 따왔습니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사랑과 희생으로 희망과 생명을 되살리는 성탄의 기적을 우리네 정서로 찬미한 명시지요.
그런데 시인이 남긴 또 한 편의 '성탄제'는 사뭇 스산합니다
"가슴에 눈물이 말랐듯이, 눈도 오지 않는 하늘. 저무는 거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동녘 하늘에 그 별을 찾아본다"
하지만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의 크리스마스도 올해처럼 어둡고 삭막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감사 예배도 올리기 어렵고,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하지도 못하는 이 겨울 컴컴한 터널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빈 거리에는 대신 증오의 고함과 욕설만 환청으로 메아리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나라를 둘로 쪼개 뒤흔들어온 정치적 공방이 한 매듭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첫 재판에서 법적 진실을 가린 데 이어, 윤석열 총장 징계가 법에 의해 정지됐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무리하게 내치려다 자초한 정치 대참사입니다.
그 맨 앞에는 법과 규정과 절차를 어기며 폭주한 추미애 장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추미애 대 윤석열의 승부를 가른 것 역시 법과 원칙, 상식과 이성의 힘이었습니다. 그가 마패처럼 내밀어 왔던 검찰 개혁의 명분도 빛바랜 지금, 과연 진정한 개혁대상은 누구였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청와대는 윤 총장 징계와 관련해 대통령은 재량이 없어서 징계안을 그대로 재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대통령이 신청인에 대하여 한 정직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분명히 못박았습니다.
검찰총장 쫓아내기의 사법적 귀결은, 대통령 자신은 물론, 정권의 역사적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오늘 결국 국민에게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뒷말은 여전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합니다. "법원의 판단에 유념하여 검찰도 절제된 검찰권을 행사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합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임기 내내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았던 이 좌우명처럼 말이지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12월 25일 앵커의 시선은 '다시 대통령의 시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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