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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취재후 Talk] 빈손으로 이란 떠난 '실세차관'…베테랑 외교관들은 어디에

등록 2021.01.13 16:54 / 수정 2021.01.1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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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혁명수비대가 억류한 선박 한국 케미호의 석방 교섭을 위해 이란을 방문했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별다른 가시적 소득을 얻지 못한 채 다음 방문지인 카타르로 떠났다.

최 차관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이란 방문 기간 중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외교차관을 비롯해 자리프 외교장관, 헤마티 중앙은행 총재, 하라지 최고지도자실 외교고문, 졸누리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 헤크마트니어 법무차관, 마란디 테헤란대 교수 등 각계 고위층 인사와 면담하며 선원·선박 억류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조속한 억류 해제를 요구했지만, 이란 측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 불만을 토로하며 동결자산 해제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졸누리 이란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장을 접견 했다. / 외교부 제공

외교부는 13일 최 차관과 정부 대표단의 방문 결과를 정리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 차관이 원화 자금 활용에 대한 향후 계획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 내용과 함께 이번 대표단에 기재부 관계자도 포함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특히 최 차관이 이란 측에 "한국과 미국 금융시스템이 상호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원화자금 활용 극대화를 위해선 미국과의 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도 명시해 사실상 미국의 역할을 공개적으로 주문한 모양새가 됐다.

■ '실세 차관'에 던져진 난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나포된 한국 케미 호 석방 협상을 위해 이란으로 출국하고 있다.

이란 협상을 주도한 최 차관은 1974년생으로 호주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연세대에서 정치학 석사를,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를 받은 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문정인 청와대 특보(現 세종연구소 이사장)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잇는 이른바 '연정 라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40대 막내'로 꼽히며 2018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 시절 9·19 남북군사합의 등 굵직한 현안에 깊숙이 관여한 '실세 차관'으로 평가 받는다. 또 문정인 특보, 김기정 소장 등과 함께 자주파로 분류된다.

이번 선박 나포는 이란핵합의(JCPOA) 탈퇴로부터 시작한 미국의 대(對)이란 강경책과 핵심군부 암살, 이에 대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재개와 자폭드론 훈련 등 양국 갈등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다.

이란과의 양자 대화는 물론 한미관계까지 연결된 이 난제를 최 차관이 맡으면서 이란 측도 '실세 차관'의 역할을 나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란 외교관들이 '최 차관은 대통령도 자주 만나는 실세로 안다'며 실질적 대안을 제시해주길 바랐다"고 전했다.

■ '외교 베테랑'은 어디에 있나

전문가들은 자국민이나 선박, 항공기가 해외에서 억류당하는 사건의 경우 단순히 이를 구출하거나 협상하는 수준을 떠나 고차원적 외교를 수행할 '베테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전면에 나선 외교부 현직 관료뿐 아니라 국가정보원의 물밑 활동과 관련 경험이 많은 전직 인사들까지 총동원돼 신속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각종 외교 현안들이 쏟아지는 상황인데 통역 전문가 출신 장관과 대학교수 출신인 차관, 다선 정치인 출신 국정원장이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한계만 보여준 게 사실"이라며 "엇박자를 내는 대미·대중 관계는 물론 꼬일대로 꼬인 대일 외교 등 어려운 난제들을 풀어낼 능력과 실력을 갖춘 외교관들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노련한 정통 외교관들이 2선으로 밀려나고 청와대가 각종 외교현안을 일일이 주도할 경우 아마추어식 대응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있다.

■ '강한 외교력'으로 재발방지 성과 내야

외교부는 최 차관의 이란 방문 후 "한국과 이란 양국은 유구한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당면 과제를 신속하고 건설적으로 해결하는 데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와 회담을 하고 있다. / 외교부 제공

하지만 외교가에선 한국이 상대적으로 수세에 몰린 외교전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와 억류된 선박 양쪽을 모두 신경써야 하는 좁은 입지이긴 하지만, 저자세 논란을 낳은 외교가 되려 협상 지렛대(레버리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 차관이 선박 나포 문제 해결을 위해 출국한 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선 이란의 한 강경파가 "한국은 모욕을 당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이란에 억류된 한국 케미호 선장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 외교부 제공

대외 환경에 의지해 석방을 기다리며 여론 관리에 집중하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외교로 신속한 해법을 도출해 조기석방 성과를 거두는 것은 물론, 향후 재발방지를 위한 강한 외교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케미호 선원들은 아직도 반다즈아바스 해역에 떠있다. / 구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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