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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위선의 미학

등록 2021.01.26 21:53 / 수정 2021.01.2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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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미스터 빈이 장터에 판을 벌여 여비를 구걸합니다.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세요…"

우스꽝스러운 몸 개그와 슬픈 아리아가 엇갈리면서 폭소를 자아냅니다. 영화 속 인물과 클래식의 부조화는 사악한 악인에게서 더 두드러집니다. '레옹'에서 베토벤을 좋아하는 악당이 그렇습니다.

"폭풍이 오기 전 이 고요함이 맘에 들어. 베토벤이 연상되거든" 

'양들의 침묵' '리플리' '시계태엽 오렌지'의 사이코패스들도 클래식 광입니다. 잔혹한 범죄와 고상한 클래식이 일으키는 충돌과 괴리는 영화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관객이 세상에 품는 기대와 환상을 깨뜨려버리지요. 그러면서 현실은 그리 고상하지 않고 이중적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곤 합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소식을 접하면서, 기괴하고 자극적인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같은 당 동료이자 성폭력 근절에 앞장서 온 장혜영 의원을 추행한 닷새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폭력으로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쓰여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당은 여성과 약자 보호를 외쳐온 이른바 진보 정당입니다. 그런 공당의 대표가 초유의 성추행을 저질러 위선의 바닥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진보진영 정치인의 파렴치 행렬에 또 하나 충격적 사례를 더했습니다.

다만 비슷한 사건들과 달리 축소-은폐 시도가 보이지 않고, 가해자가 시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당 대표이기에 더더욱 무관용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장 의원의 용기 있는 자세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런데 민주당도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해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처지인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을 "맑은 분"이라고 감싸고 "님의 뜻 기억하겠다"고 플래카드를 내건 것이 누구였습니까. '피해 호소인' 이라는 기발한 호칭을 짜내 2차 가해에 앞장선 것은 어느 당이었습니까. 피해자를 "박 시장 살인범으로 고발하겠다"는 단체는 또 어느 쪽 사람들인가요.

영화든 현실이든 악당이 클래식을 좋아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교묘한 말과 낯빛이 실제 행동과 따로 노는, 기이하고 불편한 일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1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위선의 미학'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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