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테이프는 5초 후 자동으로 파괴됩니다"
스파이극 '미션 임파서블'에서는 주인공이 비밀 임무를 받으면 곧바로 지령 장치가 불타곤 합니다. 1970년대 '제5 전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안방에 찾아왔던 TV 시리즈에서는 녹음 테이프였던 게, 영화에서 다양하게 진화했지요. 카세트테이프 안경 카메라 공중전화 레코드판까지… 후환이 없도록 작전 지령이 저절로 삭제되는 아이디어가 반세기 전부터 나왔던 겁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호텔방 맞은편 사무실에 잠입한 괴한들을 검프가 신고해 워터게이트가 터졌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컴컴한 사무실을 뒤지는 모습이, 일요일 심야에 몰래 원전 파일 4백마흔네 개를 삭제한 산업부 간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문명국가라면 보기 힘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이 지난해 드러난 직후, 삭제 문서 중에 북한 원전건설 파일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민주당 의원이 "소설 같은 얘기"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건의 존재가 엊그제 검찰 공소장에서 확인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 때부터 검토한 내부자료" 라고 했다가 산업부가 아니라고 하자 '추론' 이었다고 했습니다. 불리한 사안이 터지면, 부인하고 잡아떼고 둘러대기부터 하고 보는 전형적 행태입니다.
설령 '아이디어 차원 내부자료'라는 산업부 해명을 곧이 듣는다 해도,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 원전건설 아이디어가 나온 것 자체가 황당합니다. 더욱이 원전건설은 자칫 북한에 핵연료를 대주는 결과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면, 국장급 고위 공무원들이 쇠고랑 찰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파일을 삭제할 이유가 뭐였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습니다.
'북한 원전 추진'을 줄인 '북원추' 파일은, 북쪽을 뜻하는 핀란드어 폴더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굳이 핀란드 말까지 갖다 붙인 속내가 무엇이었을까? 여러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대통령은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 대립"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사실 이적 행위냐, 북풍 공작이냐 하는 정치공방을 끝낼 방법은 명쾌합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떳떳하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실을 있는 그대로 소상하게 밝히면 끝날 일입니다.
2월 1일 앵커의 시선은 '이적과 북풍' 이었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