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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대법원장의 침묵

  • 등록: 2021.02.02 오후 21:48

  • 수정: 2021.02.02 오후 22:46

작곡가 존 케이지는 거장 백남준의 멘토였습니다. 그가 1952년 발표해 현대음악의 신화가 된 피아노곡 '4분 33초'의 공연 장면입니다. 4분 33초 내내 조용합니다.

악보는 텅 빈 채 '침묵'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케이지는 이 곡을 초연할 때 싸늘했던 객석을 회고했습니다. "관객들은 웃지 않았다. 짜증을 냈을 뿐" 이라고. 그는 "3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화를 낸다"고 했지요.

침묵은 금이라지만 언제나 유쾌한 건 아닙니다. 유대 금언집은 "어리석은 자가 현인인 척하기란 간단하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수필가 피천득도 "침묵은 바보들이 체면을 유지하는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시인이 남긴 시입니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들에게. 차렷, 열중쉬엇, 차렷! 느네들 정말 그따위로들밖에 정신 못 차리겠어?"

독자를 길들이겠다는 당돌한 선언입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 백예순한 명이 임성근 부장판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일선 판사 탄핵을 가결하기에 충분한 숫자입니다. 임 판사는 작년 2월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고, 오는 28일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법조계 일각에서 느닷없다, 생뚱맞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권의 저의를 의심하는 쪽에서는, 김경수 지사 유죄, 윤석열 총장 징계 무효, 정경심 교수 법정구속에 이르는 일련의 판결들에 주목합니다. 앞으로는 또 원전과 울산선거 의혹 재판이 기다립니다. 헌재 결정에 앞서 초유의 탄핵 의결만으로도 일선 법관들에게 끼칠 심리적 영향은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정권에 불리한 판결이 나올 때마다 온갖 막말과 협박이 쏟아져도 길게는 몇 주씩 침묵하다 마지못한 듯 한마디 하던 대법원장입니다.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한 달 전 시무식에서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여건을 굳건히 지키겠다"던 다짐도 무색합니다.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은 발췌개헌이 위헌이라는 판결에 이승만 대통령이 불만을 표시하자 "이의 있으면 항소하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습니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무게는 그렇게 엄중한 것인데, 지금 우리 대법원장의 처신은 그 무게에 걸맞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자존심이란 무엇입니까. 링컨은 자존심을 '마지막 친구'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러날 때까지 모든 친구를 잃더라도, 내 마음속 한 친구만은 남아 임기 동안의 일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2월 2일 앵커의 시선은 '대법원장의 침묵'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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