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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

등록 2021.02.22 21:50 / 수정 2021.02.22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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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유난히 매서웠던 올겨울 새해 벽두부터 남녘 산사에 홍매화가 피었습니다.

설도 오기 전 섣달에 피는 꽃을 납월매라고 합니다만 동짓달에 서둘러 핀 겁니다.

양산 통도사 자장매도 벌써 한 달 전 꽃망울을 떠뜨렸습니다.

옛 선비들은 그렇듯 눈 속에 피는 설중매의 곧은 지조를 이렇게 예찬했습니다.

"매화는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거짓과 위선에 빠진 세태를 통렬하게 공격했던 조선 말기 신지식인이었지요. 연암 박지원은 이 여덟 자를 써놓고 몸가짐을 다잡았습니다.

'머뭇거리며 당장의 안락함에 빠져, 구차하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얼른 꿰매려'는 하수의 얄팍함을 가리킵니다.

곧은 선비 조지훈도 '지조론'에서 "한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시 영화를 누리려고 비루하게 살지 말라는 꾸짖음이지요.

김명수 대법원장이, 녹취 음성 공개와 거짓말 파문이 터져 나온 지 보름 만에 사과문을 냈습니다.

하지만 사과 방식부터가 대법원장이라는 자리에 걸맞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라면 적어도 법원 내부망에 글을 올리는 정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그는 "사법부를 둘러싼 여러 일로 심려가 크시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사법부가 아니라 본인의 언행과 처신에서 비롯됐습니다. 보름 전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한 답변" 이라고 둘러댔던 것처럼 "부주의한 답변" 이라는 말로, 거짓말 파문을 어물쩍 피해보려 한 것도 대법원장 답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고려도 없었다"고 했습니다만 그는 육성으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 국회에서 무슨 말을 듣겠냐는 말이야…"

이른바 대국민사과에서 또다시 거짓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유구무언의 반대말로 온갖 말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뜻의 '극구발명'이란 말이 있습니다. '구차'는 신발 바닥에 까는 지푸라기 '구저'에서 파생됐다고 합니다.

그렇듯 '모멸을 감수하고 작은 동정을 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중국 고전에 전해옵니다.

지난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신현수 민정수석 사표 파동이 일단락됐습니다.

청와대의 거듭된 설득에 일단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겠다고 신 수석이 한발 물러선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 수석은 빼앗긴 자존심을 얼마간이라도 되찾았고 청와대도 파국은 피한 셈이 됐습니다.

신 수석의 처신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요직에 중용됐다고 해서 눈치를 살피고 머리나 조아리는 어느 고위공직자의 처신과는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2월 22일 앵커의 시선은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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