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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범이 내려온다

등록 2021.03.05 21:51 / 수정 2021.03.0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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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뒤에 임금이 나랏일을 살피던 집무실 사정전이 있습니다. 앞마당에 사육신을 꿇어앉히고 세조가 직접 문초를 했던 곳입니다. 모진 고문에도 성삼문과 박팽년은 세조를 "나리"라고 불렀습니다.

세조가 "내가 주는 녹을 받아먹고서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하자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리의 신하가 아니기에 녹봉은 모두 집 창고에 쌓아뒀습니다"

사육신이 숨진 뒤 세조는 "당세의 난신이요, 후세의 충신" 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구름과 바람은,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풍운조화'를 불러옵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풍운아 윤석열이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나섰습니다.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가 떠난 이제, 검찰이 진행해온 권력 비리의혹 수사들은 사실상 끝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 '살아 있는 권력' 수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는 지적이 없지 않습니다. 계산된 정치 행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하지만 조국 사태 이후 1년 반, 그에게 몰아닥친 수난은 차라리 인간적 모독에 가까웠습니다. 인사학살 네 차례, 지휘권 발동 세 차례, 총장 직무정지와 징계로도 모자라 온갖 비난과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급기야 거대 여당이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이는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사퇴로 마침내 소원을 푼 곳이 어디인지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는 퇴진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말했습니다.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이상 지켜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시처럼 그는 고난의 겨울나무였습니다.

"영하 이십도 지상에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정치가 그를 정치판으로 불러들였으니 이제 결자해지 할 일만 남았습니다. 다만 그가 다음 발을 어디로 내디디든, 검사로서 보여줬던 기개와 용기가 빛을 발할 곳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이 정권 들어 더 커진, 정의와 공정에 대한 국민의 목마름을 풀어준다면 더 좋겠습니다. 겨울 나무가 끝끝내 꽃 피는 봄 나무로 서듯 말입니다.

3월 5일 앵커의 시선은 '범이 내려온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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