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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현주 앵커가 고른 한마디] "피지 않는 꽃은 없다"

등록 2021.03.27 19:47 / 수정 2021.03.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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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벚꽃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어 봄 소식을 일찍 알렸습니다.

창경궁은 이미 노랗고 발그레한 물결로 꽃대궐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아직 겨울잠을 자는 나무도 있습니다.

대추나무는 봄이 다 지나서야 깨어납니다.

그렇지만 늦여름까지 1년에 세 번 꽃을 피워 다른 나무보다 훨씬 많은 열매를 맺는다죠. 어쩌면 대추나무는 남들보다 긴 겨울잠을 자면서 더 충실히 가을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도, 자기 재능을 일찍 꽃피우는 신동이 있는가하면 시작은 늦었지만 더 많은 열매를 키워내는 대가들도 있지요.

배우 윤여정 씨는 70대에 세계 영화상을 휩쓸었고 소설가 박완서 씨도 마흔 살에 등단해 한국 문학에 유산을 남겼습니다.

얼마 전, 25살 청년이 미처 꽃을 피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잠수교 난간에 붙은 노란 쪽지들. 잠수교에서 사라진 아들을 찾는 엄마의 애절함이 적혀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
"하염없이 부르고 싶은 이름, 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은 '열심히 살아보려했는데 잘 안 됐다'는 말과 4천여 만원의 빚을 남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한 번의 실패로도 낙오되는, 노력만으로는 좁혀지지 않는 사회 구조가 젊음의 희망마저 꺾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학자금 대출 받아 공부했는데 취업이 안 돼 신용불량자가 되는 청년 실신(실업+신용불량자) 시대입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20대가 최근 4년새 44% 늘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자랑'이 되고 싶었으나 '짐'이 되는 현실에 죄송스럽고 부모는 좋은 환경과 기회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뿐일테죠.

나태주 시인의 이 유명한 풀꽃 시는 발표한 지 10년이 지난 뒤 교보문고 글판에 걸리면서 알려졌습니다.

나 시인은 좋아서 쓴 시가 환갑을 넘어 사랑 받았으니 인생의 반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그가 또 16자의 짤막한 글로 우리에게 위로를 건넵니다.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오늘 앵커가 고른 한마디는 <피지 않는 꽃은 없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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