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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판문점회담, 그 후 3년

  • 등록: 2021.04.27 21:51

  • 수정: 2021.04.27 21:55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나잇!" 

트루먼은 모든 것이 연출된 거대 세트장에 살며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됩니다. 그는 뒤늦게 진실을 깨닫고 탈출하다 쇼 연출자에 맞섭니다.

"난 누구죠?"
"자넨 스타야"

"전부 가짜였군요"
"자넨 진짜야… 생방송 중이란 말이야"

가상세계를 구축하고 지휘하는 연출자는, 자기확신에 빠진 지도자를 상징합니다. '트루먼 쇼 증후군' 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자신을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으로 여기는 것을 가리키지요.

3년 전 오늘,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김정은 위원장이 농담을 던집니다.

"잘 연출됐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김여정에게 덕담을 건넵니다.

"우리 김여정 부부장은 남쪽에서는 아주 스타가 됐습니다"

이튿날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자를 돌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고 말이지요.

판문점에 이어 싱가포르와 베트남 미북정상회담 생중계는 세계인을 TV 앞으로 끌어당겼습니다. "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야 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뛰어난 리더십을 지녔다"고 추켜세웠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2년 전 "세 차례 미북정상회담은 방송용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지요.

그 뒤로 김정은 위원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비핵화는커녕 핵 증강에 박차를 가했고,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서해에서 우리 국민을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급기야 트럼프가 성명을 내 "문 대통령은 지도자로서 협상가로서 약했고,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단 한 번도 존중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트럼프가 대북정책을 변죽만 울렸을 뿐" 이라는 문 대통령 인터뷰에 발끈해 한 말이지만 당시에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비슷한 분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유가 뭐였든 문 대통령이 "세계사의 엄청난 대전환"이라고 했던 일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또다시 "대화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일관된 의지만큼은 높게 평가할만 합니다. 하지만 남북 관계가 냉엄한 현실을 도외시하고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건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트루먼이 탈출하고 '트루먼 쇼'가 막을 내리자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하지만 쇼는 쇼일 뿐, 곧 다른 쇼를 찾습니다.

"다른 데는 뭐하지?"
"TV 편성표 어딨어?" 

4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판문점회담, 그 후 3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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