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전체

[취재후 Talk] 의원직 지킨 김한정 의원, 양주 '온라인 판매가격'이 살렸다?

  • 등록: 2021.05.01 09:00

  • 수정: 2021.05.01 10:55

"됐다 됐어, 90만 원이래."

지난 수요일(28일) 서울고등법원 302호 법정 앞에서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항소심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자, 당선 무효형인 '100만 원'을 넘기지 않았다며 김 의원 지지자들이 안도한 거죠.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당선인이 선거 관련 범죄로 징역 또는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습니다.(공직선거법 제264조)

현직 국회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벌금 100만 원을 넘길까, 안 넘길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기도 합니다.

△ 21.04.28 김한정 의원 법원 출석 모습 / 연합뉴스
△ 21.04.28 김한정 의원 법원 출석 모습 / 연합뉴스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민들에게 양주를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던 김 의원도 100만 원에서 10만 원이 모자란 '90만 원'으로 의원직을 지켰습니다.

● '발렌타인 30년산' 백화점 가격 vs 온라인 쇼핑몰 가격

김 의원의 의원직을 지켜준 것은 발렌타인 30년산의 '온라인 쇼핑몰 가격'이었습니다.

1심 재판부(의정부지법 형사13부)는 김 의원이 제공한 발렌타인 30년산 양주 가격을 검찰이 주장한 백화점 판매가 105만 원으로 봤습니다.

당시 사건 현장에 동석했던 6명 중 선거구민 4명이 양주를 제공받았다고 보고 재판부가 책정한 범행 금액은 1인당 70만 원.
(105만 원 ÷ 6명 x 4명 = 70만 원)

하지만 2심 재판부(서울고법 6-1형사부)는 양주 값을 5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김 의원 측이 "백화점이 아닌 온라인 등 시중에서는 '발렌타인 30년산 양주'를 50만 원에 살 수 있다"며 'A 주류백화점 온라인 판매가' 등을 증거로 제출했기 때문이죠.

△김한정 의원 측이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힌 'A 주류백화점'의 온라인 판매 사이트 캡쳐
△김한정 의원 측이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힌 'A 주류백화점'의 온라인 판매 사이트 캡쳐


기자가 해당 업체에 전화해 가격을 문의하니 나무 케이스에 담긴 발렌타인 30년산 양주는 55만 원이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백화점 가격은 2배(110만 원) 정도"라며 "백화점이 터무니없이 마진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도 김 의원 측 주장을 받아들이며 "주류는 백화점에서 시세보다 다소 비싸게 판매되는데, 김 의원이 이 사건 양주를 백화점에서 구매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양주 가격이 '온라인 판매가' 50만 원으로 줄면서 2심 재판부가 책정한 범행 금액도 1인당 33만 3333원으로 줄었습니다.
50만 원 ÷ 6명 x 4명 = 33만 3333원)

김 의원 측 변호인은 "일반 소비자들이 해당 양주를 50만 원에 구매할 수 있다면 시중 판매가격으로 책정하는게 맞다"며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칙에 따라 재판부도 이 주장을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 동종 전과 있는데, "다시는 그러지 마라?"

1심에서 다투지 않았던 '양주 값'이 2심 재판에서는 쟁점이 됐고, 재판부는 "백화점 가격 105만 원"이라는 검찰의 주장과 "시중에서는 50만 원"이라는 변호인의 주장 가운데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입니다.

실제 검찰 조사 과정에서도 김 의원이 어디서 양주를 구매했는지, 구매가격이 얼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입증 책임이 있는 검찰이 '양주 값' 공방에서 진 셈이죠.

하지만 의문은 남습니다.

김 의원은 지난 2016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50만 원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동종전과'가 있는 겁니다.

△ 대법원 양형위에 따른 '선거범죄 양형기준'. 동종전과가 있으면 '가중요소'가 된다. / 대법 양형위원회 캡쳐
△ 대법원 양형위에 따른 '선거범죄 양형기준'. 동종전과가 있으면 '가중요소'가 된다. / 대법 양형위원회 캡쳐


1심 재판부는 이를 특별양형인자의 '가중요소'로 봤고, 2심에서도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범행 금액이 1인당 30만 원으로 의원직 상실까지 보기엔 너무 과하다"며 '감경요소'를 추가해 양형이 실제로 가중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정상을 종합해서 이번에 한해서는 국회의원직 유지할 수 있는 형을 선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음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를 하지 않도록 매사 각별히 유의하시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죠.

2심 재판부는 1심 선고형인 150만 원에서 60만 원 낮은 벌금 9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1.2심 재판부가 다르게 책정한 양주 값의 차이도 이와 비슷한 55만 원입니다.

● 매년 반복되는 공직선거법 '80만 원 법칙'

지난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1대 현역 국회의원 27명 가운데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은 건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 두 명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인 김 의원이 2심에서 90만 원으로 감형됐습니다.

4월 28일 기준으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제외하면 8명이 백만 원 이하 벌금형이나 선고유예, 무죄 판결 등을 받았습니다.

20대 국회는 어땠을까요?

20대 국회에서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33명이 기소됐는데 19명이 100만 원 미만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그 중 10명이 '벌금 80만 원'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당선 무효처리가 된 의원은 7명이었습니다.

20년 전에도 '80만 원 법칙'은 지켜졌습니다.

지난 2000년 4월 16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당시 선거구민들에게 축구공과 명함 등을 배포하고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파기 환송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지켰습니다.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도 같은당 안동시지구당 부위원장 장모씨에게 설 제수용품비 명목으로 20만 원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벌금 80만원을 선고 받았습니다.

● '벌금 100만 원'만 안 넘기면 된다?…"1원도 주고 받아서는 안 돼"

△ 21.04.28 김한정 의원이 항소심 선고 후 취재진 앞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 21.04.28 김한정 의원이 항소심 선고 후 취재진 앞에서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유죄는 인정됐지만, 법정 밖에서 김 의원의 선고 결과를 기다리던 지지자들은 "90만 원으로 감경됐다"며 기뻐했습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온 김 의원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면서도 "1심 판결을 바로잡아 준 항소심 재판부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공직선거법을 위반해도 "벌금 100만 원만 넘지 않으면 된다"는 찜찜한 느낌을 받은 건 기자뿐이었을까요.

선거법을 만든 취지는 "1원도 주고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일텐데 말입니다.

검찰은 다음 주 수요일까지 김 의원에 대한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 장윤정 기자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