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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문제는 사람이다

등록 2021.05.14 21:48 / 수정 2021.05.14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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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명문대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에 옷장이 하나 전해옵니다. 안에, 밀랍 머리를 한 해골이 들어앉아 있지요.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말했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입니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해부실습에 쓴 뒤 미라로 보존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죽고 나서도 다수의 행복에 보탬이 되겠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가정집 옷장에 해골이 있다면 십중팔구 살인의 증거일 겁니다. 그래서 '장 속의 해골'은 '절대 드러나선 안 될 비밀'을 뜻합니다.

미국에선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에 앞서 후보자에게 묻는 검증 문항이 이백서른 개를 넘습니다. 심지어 "낙태 경험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입니다. 그 맨 마지막 문항이 바로 "옷장에 숨겨둔 해골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인재를 등용할 때 철저히 가리고 따지는 데엔 동서고금이 따로 없습니다. "샅샅이 긁어내 뼈를 발라내고 살을 도려내라" 이 무시무시한 말 '파라척결'은 숨은 인재를 널리 찾아내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비밀과 결점을 샅샅이 뒤진다'는 뜻이니까 '옷장 속 해골'과 통합니다.

청와대와 여당이, 박준영 후보자 사퇴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총리 인준과 나머지 장관 임명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습니다. 박 후보자 사퇴가 대통령 결정이라고 밝힌 것만 해도 '이 정도면 크게 충분히 양보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공직자의 도덕성은, 하나 주고 몇을 받는 거래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설사 그렇게 적당히 봉합한다고 해서 도덕성이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 이래서 희생시키고, 누군 또 이래서 살리는 식이라면 국민이 납득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청문회 제도로 좋은 인재를 발탁할 수 없다"며 청문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사전검증 질문항목이 가혹해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청와대에 검증 기능과 인력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옛 가르침 '파라척결'처럼 널리 샅샅이 인재를 찾으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람을 못 구할 리 없습니다. 내 편, 내 사람만 찾고 공직을 논공행상처럼 여기기 때문에 이런 후보들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는 장치가 아니라 견제하는 제도입니다. 국회 청문회가 인사권자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청문회의 앞날 역시 암담할 뿐입니다.

5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문제는 사람이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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