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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거덜들이 거덜내는 나라 2

  • 등록: 2021.05.20 21:49

  • 수정: 2021.05.20 21:52

"이 핏덩어리한테 군포를 매긴다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일 아니오"

다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된 흑산도 이야기에 군포가 나옵니다.

병적에 오른 백성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대가로 물렸던 천이지요. 그런데 탐관오리들이 갓난아기까지 병적에 올려 가혹하게 거둬들인 혈세였습니다.

다산이 유배된 강진에서는 더 참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갓난아기까지 병적에 올라 마지막 가진 소까지 빼앗긴 백성이 더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남자의 상징을 잘라버린 겁니다. 다산이 그 사연을 한탄한 시가 이 '애절양' 입니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 울음도 서러워라. 동헌 향해 통곡하고 하늘에 울부짖네…"

"금동이에 아름답게 빚은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

춘향가 '어사 출도'에서 이몽룡이 백성의 기름과 피, 고혈을 기름진 안주와 맛있는 술에 비유해 변학도를 서릿발처럼 꾸짖은 명시입니다. 

그렇듯 예나 지금이나 세금은, 백성과 국민의 피입니다.

그런 혈세 171억원을 들여 세종시에 어거지로 지은 관세평가분류원 청사가 일년 넘게 텅 빈 채 방치돼 있습니다.

그 유령 청사 덕분에 공무원 마흔아홉이 아파트를 특별 분양받아 많게는 몇 억원씩을 앉아서 챙겼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건가요.

공무원에게 특별 공급하는 특공 아파트는, 세종시에 살면서 업무에 전념하라고 만든 정책입니다. 그런데 관평원 공무원들은 거기서 살지도 않으면서 재산을 불렸지만 환수할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세종시로 왔다가 다시 떠난 관청들에서도 비슷한 '특공 재테크' 사례가 여럿 드러났습니다.

무주택 10년이 넘어도 당첨이 하늘에 별따기이고, 정부 약속을 믿다가 전세 난민이 돼버린 서민들 눈에는 이 광경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정부는 딱 부러지게 해결해볼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관평원 유령 청사만 해도, 이전 대상이 아닌데도 결국 짓고 방치되기까지 관련된 대여섯 개 부처들 모두 "우리는 잘못이 없다"고 손을 내젓고 있습니다.

정부와 공무원들부터 이러면서 어떻게 국민 신뢰를 얻어 투기를 잡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거덜은, 조선시대에 권세를 뒤에 업고 거들먹거리던 수행 관직을 가리킵니다. 거기서 나온 말이 거덜나다입니다.

얼마 전 저는 LH 사태와 관련해 '거덜들이 거덜내는 나라'라고 풍자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 다시 한번 묻습니다.

지금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까, 거덜들입니까.

5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거덜들이 거덜내는 나라 2'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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