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전체

[신동욱 앵커의 시선] 그들은 왜 울분의 팻말을 들었는가

  • 등록: 2021.06.07 21:51

  • 수정: 2021.06.07 21:56

유월입니다. 한강변을 비롯한 곳곳에 꽃양귀비 붉은 물결이 일렁입니다. 시인이 노래했듯 관능과 슬픔을 함께 지닌 꽃이지요.

1차대전 서부전선은 끔찍했습니다. 시신과 쥐가 들끓는 참호에서 수십만 병사가 숨져갔습니다. 서부전선 플랑드르에서 캐나다 군의관이 부하를 묻어준 뒤 무덤가에 흐드러진 양귀비를 시로 읊었습니다.

"들판에 양귀비꽃 흔들리네, 십자가들 사이로. 우리는 죽은 자들, 플랑드르 들판에 누웠네"

그래서 영연방 국가들은 현충일을 '양귀비의 날' 이라고 부릅니다. 여왕, 총리부터 모두가 양귀비 배지를 한 달 내내 달고 다니며 옷깃을 여밉니다. 그런 추모 문화가 부러웠던 걸까요. 대전 현충원에 '플랑드르 들판에서' 시비가 섰습니다. 호국영령의 상징 삼아 꽃양귀비를 가꿉니다. 

현충일은 나라 지킨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어제 대통령이 참석한 서울 현충원 추념식장 주변에 천안함 장병들이 모였습니다. "나라에 목숨 바친 천안함 장병들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통령님의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고…"

현충일에 이들을 현충의 성지로 불러낸 것은 무엇보다, 대통령 직속 군 사망 진상규명위원회가 얼마 전 결정했던 천안함 재조사 방침입니다.

끊임없이 좌초설을 주장하며 민주당 추천으로 조사단 위원을 지냈던 사람의 진정을 받아들인 겁니다. 논란이 커지자 거둬들이긴 했지만 장병들 가슴에 더한 피멍은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라고 천명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순국 장병의 어머니가 대통령을 붙들고 "늙은이 한을 풀어달라"며 묻자 "북한 소행이라는 게 정부 입장 아니냐"고 한 게 고작입니다. 여전히 음모론이 횡행하지만 단 한 번도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식에 이어 공군 여중사 추모소를 방문해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천안함 유족과 장병은 물론, 서해에서 사살당한 우리 국민과 유족도 듣고 싶은 것이 바로 그 말 아닐까요.

고 조창호 중위는, 6.25가 터지자 "국가존망 위기에 사내가 무엇하느냐"는 어머니 질책에 자원 입대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43년 만에 돌아와 늘 했던 말이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희생돼도 국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누가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6월 7일 앵커의 시선은 '그들은 왜 울분의 팻말을 들었는가'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