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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침묵의 명수

등록 2021.06.14 21:50 / 수정 2021.06.1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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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길에서 컵라면을 발견했습니다. 주인이 찾으러 오자 얼른 주저앉아 치마로 감춥니다. 주인이 째려봐도 눈만 끔벅끔벅, 모르는 척합니다. 어깨를 툭툭 쳐도 끝까지 뭉개고 버팁니다. 어느 컵라면 광고처럼, 뭉개기의 달인, 버티기의 명수들이 구사하는 수법이 안면몰수, 침묵하는 겁니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돼도 입을 굳게 닫고 눈만 끔벅거립니다. 하긴 입이 있어도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1970년대 고교야구에서 군산상고가 얻었던 별명이 '역전의 명수' 입니다. '역전의 명수'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역전에 사는 건달 명수가 인생 역전을 이룬다는 코미디였지요. '명수'란 '기능이나 기술 따위에서 소질과 솜씨가 뛰어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침묵에도 명수가 있습니다.

"며느리께서 일하시는 한진 법무팀에서 만찬 하셨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질문하는 기자들이 투명인간이라도 되듯, 김명수 대법원장이 묵묵부답 지나칩니다. 그런데 이미 본 듯한 '데자뷔' 장면입니다.

"법원 안팎에서 사퇴 요구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도 입장표명 없으십니까?"

국민에게 거짓말을 해놓고도 어물쩍 뭉개고 넘어가려던 김 대법원장이 이번엔 공관 만찬 논란에 봉착했습니다. 함께 살던 변호사 며느리가 한진 계열사 법무팀 동료들을 불러들여 가진 만찬입니다. 

문제는 시점입니다. 대한항공 '땅콩사건'에서 대법원이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집행유예를 확정한 직후였습니다.

판결에 김 대법원장도 참여했습니다. 몸가짐 하나도 삼가고 조심하는 대법원장이었다면 당연히 꾸짖고 막았어야 할 일입니다. 오라는 사람도, 오라고 한다고 가는 사람도 상식선에선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세금을 들여 공관을 고급스럽게 꾸미고 손주 놀이시설도 만들었습니다. 강남 아파트에 당첨된 법조인 아들 부부를 1년 석 달 동안 데리고 살아 '공관 재테크'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사이 며느리가 만찬을 연 겁니다.

문단의 원로 평론가 김병익씨가 엊그제 그와 조국 전 장관을 가리켜 "참 상상하기 힘든 인간형" 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성찰이나 부끄러움이 없다"며 "86세대가 갖고 있는 집권층의 뻔뻔함" 이라고 했습니다.

대법원장이라고 해서 대단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선의 염치를 바라는 겁니다.

김 대법원장의 처신을 두고 법조계에 '참담하다'는 자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정말 슬픈 것은, 대법원장의 이상한 처신이 아니라 뭉개고 버티며 시간 가기만 기다리는 그 '탁월한 침묵의 솜씨'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맡겨져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6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침묵의 명수'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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