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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솥단지 뒤엎기

등록 2021.06.17 21:52 / 수정 2021.06.1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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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솥, 솥, 소~옽…" 

초여름 보릿고개에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백성들은 길흉을 점쳤습니다.

"솥적 솥적 소쩍꿍" 하고 울면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소리라며 풍년의 꿈에 부풀었지요. "소텅 소텅" 울면 '솥이 텅텅 비는 흉년이 든다'고 걱정했습니다. 밥 짓는 솥은 백성에게, 삶의 마지막 소망이었습니다. 굶주리지 않고 그저 먹고살게만 해달라고 머리 조아리는, 부뚜막의 조왕신이었습니다. 그런 솥을 스스로 뒤엎고 내던지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3년 전 폭우가 퍼붓던 광화문광장에 수만 명이 모여 솥단지를 내던졌습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내지른,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정부가 50인 미만 영세기업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7월부터 밀어붙이겠다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진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연기해달라는 중소업계 요청을 매몰차게 묵살했습니다. 영세기업들은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과 인력난에 코로나까지 겹친 극한상황에서 52시간제까지 시행되면 치명적이라고 호소해왔습니다. 그래서 1~2단계처럼 계도기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동안 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며 '대상 기업의 93퍼센트가 감당할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내밀었습니다. 업계가 조사한 56퍼센트와는 온도차가 큽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주로 용접 금형 열처리를 해 납품하는 풀뿌리 제조업입니다.

52시간제를 지키려면 사람을 더 고용해야 하고, 연장근로수당을 못 받는 근로자들은 생활비를 대려고 '투잡'을 뛰어야 할 형편입니다. 자금난과 인력난에 뿌리산업이 흔들리면 중견기업도 연달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전국민 지원금을 준 데 이어 다시 위로금을 주겠다고 합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신용카드 환급도 추진합니다. 그러면서 영세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호소하는 52시간제 유예에는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52시간제이기에 생존의 솥단지를 뒤엎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제도로, 법으로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삶이라는 게 어디 그리 간단하던가요?

시인의 귀엔, 소쩍새 소리가 눈물 훔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소쩍 쩍, 훌쩍" 시인은 누군가 울 땐 가만히 들어주라고 했습니다. 모질고 각박한 삶을 버텨내느라 훌쩍거리는 사람들을, 어루만져주라고 했습니다.

6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솥단지 뒤엎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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