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 보지 않은 길이라…" 세종의 부름을 받은 신미대사와 스님들이 수양-안평 대군과 함께 머리를 짜내 소리글자 만들기에 나섭니다.
"아음!" "개OO 개구리 거북이 구슬…" 한글은 세종대왕 지휘 아래 왕실과 집현전, 불교계가 총동원된 종합작품이었습니다. 요즘 용어를 쓰자면 '집단지성'의 힘이었습니다.
미국 대학교수가 콩과자 8백쉰 개가 담긴 유리병을 실험집단에게 보여준 뒤 몇 개인지 맞혀보라고 했습니다.
각기 답한 숫자들의 평균값은 8백일흔한 개. 그보다 더 비슷하게 맞힌 사람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이미 20세기 초, 소의 무게를 맞히는 실험에서는, 8백명이 추정한 평균값이 실제 무게와 450그램 차이밖에 안 났습니다.
그렇듯 집단지성이란,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뤄내는 지적 성과를 가리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과 반대되는 개념이지요.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이 완화된 거리 두기 개편안을 강행해 4차 대유행을 불렀다'는 책임론에 대해 정부가 "개편안은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정부, 지자체, 관련 단체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겁니다.
집단지성도 허점이 많고 때로는 매우 위험하기도 합니다. 헬스장 음악 속도 규제만 해도 집단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외국 언론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는 전형적 탁상공론입니다. 문제는 왜 정부와 청와대가, 갑자기 일제히 방역책임을 분산시키는 듯한 태도를 보이냐는 겁니다.
청와대는 기모란 기획관을 임명하면서 "방역정책을 전담할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박수현 소통수석은 어제 "기 기획관의 역할은 청와대와 정부를 잇는 가교"라며 "부서들을 컨트롤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그동안 "중대한 재난의 컨트롤타워는 청와대"라고 밝혀왔습니다.
국내외에 끊임없이 K방역의 성과를 내세우고 자랑해왔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수도권 방역점검회의에서는 "우리가 방역에 실패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청와대와 정부는 4차 대유행에 대해서만큼은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을 처지입니다. 이삼십대에 화살을 돌리려다 '문제는 백신'이라는, 정곡을 찌르는 반발에 슬쩍 거둬들였습니다.
그러더니 하루아침에 컨트롤 타워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 '집단'이 어떻고 '모두'가 어떻고 운운하기 바쁘니,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7월 15일 앵커의 시선은 '갑자기 집단 책임이 된 K방역'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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