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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지옥에서 돌아온 병사들

등록 2021.07.23 21:50 / 수정 2021.07.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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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청정한 노 선비가 근엄하게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두루마기에 관모를 썼습니다. 평상복에 중절모 쓴 격입니다. 보물, 강세황 자화상입니다.

학자이자 문신, 시-서-화에 두루 빼어난 삼절, 그리고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이 일흔 살에 그렸습니다. 우스꽝스럽게 차려입은 이유는, 그림에 써넣은 글, 자찬에 담겨 있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고? 머리엔 사모 쓰고 몸엔 평복을 걸쳤구나. 오라, 마음은 시골에 가 있으되 이름이 벼슬아치 명부에 오른 거지"

몸은 조정에 있지만 자유를 꿈꾸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자기 그림에 자기가 붙인 감상평이 재치와 품격을 겸했습니다. 자화자찬이란 원래 이런 겁니다.

"살래 아래서 쪽숟구락 주시고랭 자랑헌다"는 제주도 속담이 있습니다. '찬장 아래서 작은 숟가락 주웠노라고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자랑이라고, 참 시답잖은 자화자찬입니다. 폭풍우 몰아치는 배의 짐칸에 갇혀 있던 수병들이 아우성칩니다. 

"죽기 전에 꺼내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문무대왕함의 극한상황이 장병의 증언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직업군인이라고 밝힌 그는 "문무대왕함은 지옥이었다. 국가가 우릴 버렸다"고 했습니다. "목에서 피 가래를 토하는데 받은 건 해열제뿐"이었고, 퇴선 전날에는 전원이 밤새워 배를 닦고 소독했다고 합니다. 아비규환 지옥도가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돌아온 장병들의 가슴에 청와대와 군이 연일 불을 지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보고를 받으시자마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공중급유 수송기를 급파하라고 지시하셨고…"

그런데 이 수송기는 코로나에 감염된 교민과 근로자 귀국 등에 이미 여러 차례 투입된 적이 있었습니다. 기발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하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한 지시였을 뿐입니다.

군은 군대로 "우리 군사 외교력이 빛을 발한 철수작전" 이라고 황당한 자화자찬을 하더니, 국방장관이 청해 부대원 격려품으로 이런 과자를 보냈습니다. 코로나로 후각 미각을 잃은 한 장병은 "헛웃음만 나왔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은) 정말 정말 안타깝고 속이 타시죠" "밤잠이나 제대로 주무실까 하는 걱정도 되고요"

그런데 대통령은 군만 점잖게 꾸짖은 뒤로 며칠을 침묵하다가 오늘 뒤늦게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짧은 사과가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병사들이 입원한 병원이라도 찾아가는게 군 통수권자의 도리이자 당연한 의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대들은 나라가 지켜주겠다고...

7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지옥에서 돌아온 병사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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