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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매미를 기다리며

등록 2021.08.06 21:49 / 수정 2021.08.0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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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개들을 풀어놓았어? 누가 누가 누가. 누가 개들을 풀어놓았어? 도대체 누가 누가 누가…."

공상영화에서 외계인 통제요원의 강아지 파트너가 신나게 불러 젖히는 '누가 개들을 풀어놓았나' 입니다. 여인들이, 추근거리는 사내들을 개에 비유해 응수하는 말입니다만, 요즘같이 더운 날 거리에 개들이 출몰해 뒤엉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한여름 태양이 눈부셔서 방아쇠를 당깁니다. "하늘은 있는 대로 활짝 열려 불줄기를 퍼부었다. 내 온 존재가 긴장했고 나는 권총을 움켜쥐었다" 더위는 사람에게서 인내와 배려를 빼앗아 갑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길 일도 짜증을 내기 쉽지요.

그런데 불볕더위의 바통을 찜통더위가 넘겨받아 폭염을 퍼부은 지난 보름, 가뜩이나 더운 날을 더 덥게 만드는 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서 정치판에는 이전투구를 방불케 하는 삿대질과 드잡이질이 시작됐습니다.

와중에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한 여성을 겨냥한 인격 말살이 백주 서울 복판에서 벌어졌습니다. 올림픽 3관왕에게 엉뚱하게 따라붙은 페미니즘 논란은 외국 언론들로부터 조롱 섞인 눈총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그렇게나 어지럽게 지지고 볶아도, 지겹던 더위는 다음 주부터 한풀 꺾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매미의 짧은 시절이 시작되겠지요.

만 원 지폐에서 세종대왕이 쓴 모자가, 매미의 날개를 뜻하는 익선관입니다. 모자에 솟은 두 개의 작은 뿔이 매미 날개를 본떴지요. 신하들의 관모에도 매미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매미가 지닌 다섯 가지 덕을 본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매미는 머리에 선비의 갓끈을 늘어뜨리고 있으니 글의 덕이 있고, 이슬을 먹고 사니 맑음이 있습니다. 들의 곡식을 탐하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집이 없으니 검소하며, 계절에 맞춰 오가니 신의가 있습니다.

매미 울음도 길어야 한 달입니다. 기왕에 울 거면, 염치없고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정신 번쩍 들도록 매섭게 울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들, 남은 여름을 매미 날개처럼 맑고 투명하게 지내라고 응원해줘도 좋겠지요. 아이들의 티없는 여름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방아깨비 잡아서 어떻게 했지? 떡방아 찧고 나서 각시풀 있는 데로 가게 했어요. 베짱이는 잡아서 어떻게 했지? 비단 옷감 짜고 나서 분꽃 핀 꽃밭으로 보내줬어요"

8월 6일 앵커의 시선은 '매미를 기다리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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