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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결혼하게 해주세요

등록 2021.09.10 21:50 / 수정 2021.09.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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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날보다 화창해야 할 결혼식에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이 세상, 단 한순간도 절대로 멈추지 않죠"

신부의 빨간 드레스가 뒤집혀 날리고, 하객들은 폭포 같은 물세례에 허둥댑니다.

하지만 비바람에 쓰러지고 넘어져도 모두들 즐겁기만 합니다. 결혼은 누구도 훼방놓을 수 없는 축제입니다. 1991년 여름, 통영 앞바다 작은 섬에서 소설창작교실이 열렸습니다. 둘째 날, 소설가 윤후명이, 그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수강생과 일생을 언약했습니다.

소설가 정연희가 온 섬을 헤매며 산유화를 꺾어와 부케를 만들었습니다. 이호철이 주례를, 이근배가 사회를 봤고, 유현종이 축가를 불렀습니다. 문단의 결혼축제를 지켜보던 김주영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은 새 길을 떠나는 축복의 날. 둘이서 하나 되어 문을 열면, 비바람인들 어이 눈부시지 않으리. 오늘은 아름다운 약속의 날"

정부 서울청사 부근에 늘어선 조화(弔花)들이 이런 '근조' 글귀를 매달고 있습니다. 벌써 한 달째 1인 시위를 벌이는 단체는 전국신혼부부 연합회입니다. 현실을 외면하는 오락가락 갈팡질팡 방역지침에 울분을 누르다 못해 예비부부 6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지난 7월 정부는 4단계 거리 두기를 하면서 예식장 인원을 마흔아홉 명으로 한정했습니다.

왜 마흔 아홉명인지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대형 마트를 비롯한 백 평 이상 점포 내 식당은 숫자를 제한하지 않는 것하고만 비교해도 공평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당장 예식장들이, 원래 계약했던 몇백 명 인원만큼 식비를 청구하면서 갈등이 터져 나왔습니다. 예식업계 처지도 절박하겠습니다만, 먹지도 않는 밥값을 치르거나, 많게는 몇천만 원씩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예비부부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정부가 지난주 아흔아홉 명까지 참석자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식사를 대접할 경우는 여전히 마흔아홉 명으로 묶어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 숫자로는 가족 친척들만 초대하기도 빠듯한 데 그렇다고 청첩장을 안 보낼 수도 없는 심정이 또 어떻겠습니까.

이쯤 되면 유독 결혼식에만 왜 이렇게 가혹한가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고 급기야 "결송합니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결혼해서 죄송하다'는 자조적 탄식입니다.

이래서야 결혼이 축복 가득한 일생일대 축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눈부시게 빛나기는커녕 우울하게 빚만 쌓이는 결혼 수난시대입니다.

9월 10일 앵커의 시선은 '결혼하게 해주세요'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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