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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언책(言責), 말의 책임

등록 2021.09.14 21:50 / 수정 2021.09.1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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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가로질러 커다란 물고기가 오는데, 맙소사 9피트나 돼요!"

영국 중서부 작은 마을에서 해마다 '세계 최고 거짓말쟁이 대회'가 열립니다. 이 마을의 전설적 허풍쟁이를 기려 18년 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치인만은 출전할 수 없습니다. 평소 거짓말을 밥 먹듯 유창하게 하기 때문이랍니다.

"내 입술을 읽으세요. 증세는 없습니다"

아버지 부시가 내걸어 성공했던 대선 구호입니다. "입술을 읽어라"는 말은,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내가 장담하는데"라는 의미쯤입니다. 그러나 결국 세금을 올렸다가 대표적인 정치 식언으로 남았지요.

처칠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정치가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합니까" 처칠은 "내일, 다음주, 다음달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능력" 이라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날이 왔을 때 예언이 틀린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이 중요합니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세상에 내보낸 말에 대한 책임, 소위 언책입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자신의 사직안 국회 표결에 앞서 언책을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이상, 그동안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을 비판해왔던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를 향했던 날카로운 화살을 자신에게도 그대로 겨눠 사퇴한다는 얘기입니다.

가족과 관련한 이런 정도 의혹으로 의원직을 던진 예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민주당도 '정치 쇼'라고 공격했겠지요.

민주당은 윤 전 의원의 사직 선언이 나온 바로 다음 날, 그가 KDI에서 근무할 때 세종시 개발 정보를 아버지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한 대선 주자는 "윤희숙 의원의 부동산 투기사건" 이라고 규정짓고 KDI 전면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안 가 쑥 들어갔습니다. 땅 매입과 개발 검토 시점이 아귀가 잘 안 맞았던 건데 이번에도 역시 '아니면 말고' 였습니다. 

옛말에 "말(言)을 먹어 치워 살이 찐다"고 했습니다. 뱉은 말 도로 삼키기를 밥 먹듯 하는 정치판에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윤희숙 전 의원 부친의 행동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자녀가 국회의원이라는 엄중한 직을 던질 만한 일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사직 선언을 빈말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한국 정치사에 두고두고 소환될 이정표로 남을 겁니다.

9월 14일 앵커의 시선은 '언책(言責), 말의 책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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