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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또 한 번 잔인한 추석

등록 2021.09.17 21:50 / 수정 2021.09.1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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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리니행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보름 전 세상을 뜬 그리스 작곡가 테오도라키스의 국민가요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입니다. 2차대전 때 나치에 맞서 민병대로 떠난 연인을, 고향 역에서 한 여인이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암울하던 시대, 자유에의 갈망을 은유한 노래이기도 하지요. 세상이란 모두, 떠나고 기다리는 기차역인지도 모릅니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세상은 다시 모두 역일 뿐이다"

대구의 옛 고모역에 구상 시인의 시비가 서 있습니다.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채,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

고향 역에는 늘 그리움 외로움 기다림이 서성입니다.

코로나가 우리 모두의 일상을 뒤엎어버리는 사이, 벌써 세 번째 명절, 두 번째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작년 추석 이 플래카드를 보며 씁쓸하게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한 해를 돌아 다시 플래카드들이 내걸렸습니다. 이번에도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부모님들은 작년 추석엔 올 설을 기대했고, 올 설엔 추석을 기다렸지만 사정은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그나마 가족 여덟 명까지는 모일 수 있다는 소식이 반가우셨겠지만, 상황이 여전히 만만치 않습니다. 가속기와 브레이크 페달을 동시에 밟아대는 정부의 지침에 화가 나지만 한편으론 딱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또 어쩌겠습니까. 늘 자식 걱정이 앞서는 부모님들이 또 한번 꾹 참고, 올 추석도 슬기롭게 잘 넘기시길 바랄 뿐이지요.

신라 고대가요 회소곡의 내력이 삼국사기에 전해옵니다. 팔월 보름 한가위에 여인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 솜씨를 겨룬 뒤 "회소, 회소" 부르던 노래라고 합니다. '회소'가 무슨 뜻인지는 엇갈립니다만, 모일 회(會)자여서 '모이소 모이소' 라는 해석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듯 추석은, 흩어져 살던 피붙이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일제히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는 천륜의 행렬이 이어지는 날입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이 올 추석에도 고향역을 헛되이 기웃거리며 서성여야 할 형편입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고, 부모님들은 외로움에 또 한 해를 늙어가시겠지요. 이 잔인한 날들이 언제나 끝날지 탄식하는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만 같습니다.

9월 17일 앵커의 시선은 '또 한 번 잔인한 추석'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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