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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추석, 그래도 그립다

등록 2021.09.20 21:48 / 수정 2021.09.2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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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가난한 시인이 추석 밥상 앞에 앉았습니다. 시래깃국에 추석 달이 떴습니다. 시인은 국에서 달을 건져내며 울음을 삼킵니다. "광한전도 옥토끼도 보이지 않는, 수저에 뜬 맹물 달" 그 시절 명절은 때로 슬펐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추석 전날 밤, 도둑이 시인의 앞집을 털려다 들키자, 시인의 차 지붕으로 뛰어내려 도망쳤습니다. 이웃들이 골목에 나와 웅성거리는데 누군가 혀를 찹니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시인은 생각합니다.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사내가,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모습을…

차가 찌그러지긴 했지만 기왕에 훔친 것도 없다니, 시인은 가만히 속으로 외칩니다.

"달려라 도둑!"

낭떠러지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시인의 연민이, 이상하게 서럽습니다. 오늘 이 추석 전날 밤처럼 말입니다. 자영업자 열에 여덟이 추석 연휴에도 가게를 열거나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중에 절반 가까이는 하루도 쉬지 않고 근무하겠답니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슬픕니다.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잔혹한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안간힘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바람이 무색합니다. 그래도 올 추석은 작년보다는 귀성길이 붐볐다고 합니다. 지난해 추석엔 고향에 가겠다는 사람이 여섯 중 한 명밖에 안 됐던 게, 올해는 그나마 다섯에 한 명꼴입니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자식에, 보고 싶어도 오라고 못 하는 부모가 여전히 많습니다.

그렇듯 고난이 가혹하고 인내가 쓰디쓸수록, 다시 올 명절은 더 따스하고 더 풍요로울 겁니다. 대추 한 알도 그냥 저절로 맺히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고속도로도 이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다시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가족이 있듯, 멀리 떨어져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립고 고마운 부모님이 계시고, 건강하고 화목한 자식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한 추석입니다.

9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추석, 그래도 그립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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