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사람이 그립다

등록 2021.09.24 21:50 / 수정 2021.09.24 21:53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종신형을 받고 50년을 갇혀 산 노인이 가석방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유가 싫습니다. 혼자 사는 게 두려워서입니다.

"밤이면 절벽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꾸지. 겁에 질려 잠에서 깨면,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건지…"

노인은 결국 고독의 무게를 버텨내지 못합니다. 파고다공원 뒤 순댓국 집에서 노인이 혼자 국밥을 듭니다.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시인이 마을 주막에 노인들을 모시고 가, 소주 세 병에 두부찌개 한 냄비를 사드립니다.

"쭈그렁 노인들 다섯이 나눠 자시고, 모두들 볼그족족한 얼굴로, 큰 대접 받았네 그려!"

노인들은, 소주 몇 잔이 아니라 사람이, 젊은 사람이 그리웠던 겁니다.

서울 노원구가 지난 4월부터, 홀로 사는 노인들의 소원을 받았던 '소원성취함'을 열었습니다. 거기서 나온 글에서 아흔 살 할머니는 수의를 원했습니다. "채소 행상을 하며 키운 외아들과 연락이 끊긴 지 40년 됐다"는 할머니는 "귀가 어둡고 치매기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수의를 장만해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얻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여든아홉 살 할머니는 요양 보호사가 대신 쓴 글에서 "한글과 숫자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체장애를 지닌 일흔네 살 할머니는 "평생 본 적이 없는 바다에 꼭 가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이가 나빠 영양죽을 먹어야 하는데 냉장고가 변변치 않아 상해버린다"는 할아버지는 냉장고를 원했습니다.

"허리가 아파 집에서 기어 다닌다"는 할머니는 전동침대가 갖고 싶었고, "손자가 컴퓨터가 없어서 사주고 싶다"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원들이 찾아뵈면 사양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우니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달라"거나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가는데 모처럼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하시는 겁니다. 

"노인에게 괴로운 것은 육체의 쇠약함이 아니라 기억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 이라고 합니다. 고령화의 그늘이 깊어 지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기억의 무게도 갈수록 무거워 질 겁니다. 몸보다 외로움이 더 아픈 사람들, 사람냄새를 그리워하는 그 애잔한 마음들에 가슴이 시립니다.

9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사람이 그립다' 였습니다.

Copyrights ⓒ TV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