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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혹시나 했는데

등록 2021.10.18 21:49 / 수정 2021.10.1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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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국민작곡가 스메타나의 명곡 '나의 생애로부터' 입니다. 곡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바이올린이 귀를 찌르듯 날카로운 최고 음을 긁어댑니다. 스메타나가 겪고 있던 귀울림, 이명을 표현한 대목입니다.

귀에서 매미가 울고 물이 흐르고 전깃줄이 윙윙대는 이명은 괴로워할수록 심해지지요. 스메타나는 이명에 지쳐 정신병원에서 숨졌습니다.

귀에 물이 들어간 아이가 "자꾸 피리소리가 난다"며 친구에게 들어보라고 합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짜증을 내며 답답해합니다.

나그네들이 주막에 묵었는데,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곯아댑니다. 흔들어 깨우자 "내가 언제 코를 곯았냐"며 되레 성을 냅니다. 연암 박지원이 쓴 이야기입니다.

연암은 '나만 옳고 세상 모든 사람이 틀리다'고 강변하는 증세를 이명에 비유했습니다. '모두가 말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나는 무고하다'고 우기는 건, 코골이에 빗댔지요.

"허허허허"
"학예회 하는 것도 아니고"
"도둑은 장물을 가진 사람이 도둑이 맞습니다"

민주당이 "이재명 지사가 대국민 보고를 드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듯 경기도 국감의 주연은 이 지사였습니다. 그를 주연으로 빛내준 조연은, 사실을 따지는 논리적 추궁이 아니라 단편적 감정적 질문만 하다, 이 지사의 역공에 맥을 못 춘 국민의힘이었습니다.

민주당이 증인과 참고인 채택을 거부한 자리에서 이 지사가 유일하게 한 내 탓도 남 탓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인사를 잘못한 것, 제가 지휘하는 직원 일부가 부패에 관여한 점 사과드립니다"

대장동 사업의 최종 책임자이자 결재권자로서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남 탓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가 날린 화살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전 총장에게 집중됐습니다. 특검은 시간 끌기일 뿐이라며 거부했습니다. 더욱 드센 강공과 역공으로 돌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겁니다.

그럴수록 대선 정국은 대장동의 회오리에서 내내 헤어나기 힘들 듯합니다. 그의 주장을 얼마나 많은 국민이 납득할지도 의문입니다.

공자는 나이 예순을 가리켜, 귀가 순해져서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순의 경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처럼 남이 알아들을 수 없고, 코골이처럼 스스로 듣지 못하는 증상을 앓는다면 세상을 얻기는커녕 독불장군,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을은 속절없이 깊어 가는데 느닷없이 정월 대보름 귀 밝히는 술, 이명주 한 잔 생각납니다.

10월 18일 앵커의 시선은 '혹시나 했는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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