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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동욱 앵커의 시선] 보통 사람 노태우

등록 2021.10.27 21:50 / 수정 2021.10.2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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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수감 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첫날부터 1식 3찬 구치소 관식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하루 한 번씩 운동장에 나가 맨손체조를 하며 건강을 챙겼고, 바둑 책을 읽다 낮잠을 자기도 했답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속이 거북하다며 한동안 우유와 보리차만 마셨습니다. 면회 말고는 독방 옆 화장실에 가는 게 거동의 전부였지요.

분을 삭이지 못해 안절부절 못한 것과 대조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제때 먹고 자면서 잘 적응했다고 합니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을 "정치 보복"이라며 거부하고 합천으로 갔다가 체포 수감됐지요. 앞서 대검에 출석한 노 전 대통령은 안강민 중수부장에게 이런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헬기들이 떠다니는데 수사에 방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내 재임 때 신축한 청사에서 조사받게 돼 미안합니다"

재임 중 그에겐 '물 대통령' 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습니다.

일찌감치 레임덕에 빠졌고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였지요. 하지만 그는 "매우 좋은 별명" 이라며 "물 같은 지도자로 보이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대선 때 그는 "이 사람 믿어주세요" "보통 사람의 시대"를 구호로 내세웠습니다.

유세장에서 직접 부른 '베사메 무초'는 선거 로고송의 효시가 됐습니다.

폭압적 군부의 이미지를 벗어보려는 몸짓이었지요.

6.29선언 역시, 뜨겁게 분출된 민주화의 열망을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선언을 누가 주도했는지 엇갈리지만, 대선 당사자인 그가 직선제를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을 듯합니다.

비록 문민정부가 5년 뒤로 늦춰지긴 했어도, 군사정권과 문민시대를 이었던 징검다리 구실도 부인하기 힘듭니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16년에 걸쳐 추징금을 완납하면서 "만분의 1이라도 도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재작년부터는 아들을 광주 민주화 묘역에 보내 참배하고 사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12.12 군사 반란에 동참하고 광주민주화운동 강제진압에 가담한, 원죄가 다 가려지진 않을 겁니다.

천문학적 비자금을 모으고 챙긴 것 역시 오욕의 행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평가는 이제 역사에 맡기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제 과오들에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유언을 접하며 옛 시구와 명언을 생각합니다.

"인생이란, 눈 온 뒤 진흙탕을 걷는 기러기의 발자국 같은 것일지니" "문득 노래가 다하고 막이 내리면 곱고 미운 것이 어디 있는가"

10월 27일 앵커의 시선은 '보통 사람 노태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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