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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용서받지 못하고 떠나다

등록 2021.11.24 21:50 / 수정 2021.11.24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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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도 아이도, 걷거나 기어다니는 모든 것을 해쳤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늙은 퇴물 총잡이가 바치는 고백과 참회입니다. 그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악몽을 꾸며 죄의식에 시달리고, 머뭇거리고 두려워합니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그 사람이 지닌 모든 것과 미래까지 빼앗는 것이지" 

평화로운 마지막 장면은 그가 용서받았음을 말합니다.

영화는 폭력적인 서부극과 거기서 냉혈 무법자를 연기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에 대한 성찰과 회개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아카데미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겼습니다.

시인이 죄를 빌고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해다오. 흘러가는 강물에 함부로 발 담근 일. 힘들게 우주 하나를 밀어올리는, 무더기로 피어나는 개망초들, 함부로 꺾어 짓밟은 일"

그는 민주주의를 향해 흘러가는 역사의 강물에 함부로 군홧발을 담갔습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생명의 꽃들을 짓밟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회개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은 채 그는 떠났습니다.

내란죄 법정에서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변하는 장면도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뇌물 재판에서는 "내가 돈을 받지 않으니 기업인들이 불안해하더라"고 했습니다.

추징금 재판에선 "예금이 29만 원밖에 없다"고 버텼습니다.

"기자들이 내 사진은 꼭 비뚤어지게 찍는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철권을 휘두르던 때 자행된 광주민주화운동 학살의 책임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총기를 들고 일어난 폭동이었다. 광주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억울해 했습니다. 

4만 명이 끌려가 쉰네 명이 숨졌던 삼청교육대, 아홉 시 땡 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던 '땡전 뉴스', 짓눌린 국민을 무마하려 했던 3S도 전두환 시대를 상징하는 이름들입니다.

단임 약속을 이행하고 집권기간 동안의 경제 성장은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간선 독재를 이어가기엔 국민의 민주화 불길이 너무나 뜨거웠습니다.

경제 호황 역시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를 뜻하는 '3저 상황 덕' 이었을 뿐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그는 "나로 인한 증오와 분노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관용과 진실에 대한 믿음이 채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아픈 상처만 고스란히 남긴 채. 11월 24일 앵커의 시선은 '용서받지 못하고 떠나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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