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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신동욱 앵커의 시선] 고요한 미소에 빠져들다

등록 2021.12.07 21:50 / 수정 2021.12.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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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일본 어느 대학생이 교토 절에서 국보 '목조 미륵 반가사유상'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못해 뛰어 올라가 불상을 끌어안았습니다. 그 바람에 불상의 손가락 하나가 부러지자 주워 들고 도망쳤습니다.

일본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반가상을 연모했던 그는 며칠 뒤 손가락을 들고 자수했고, 와중에 불상의 재질이 밝혀졌습니다.

한반도 특산 소나무, 적송이었던 겁니다. 이 바람에 반가상은 신라 작품이라는 사실이, 일본 학계에서도 부인하기 어려운 정설이 됐습니다.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교토 반가상을 보고 "지상의 모든 속박을 초월해 도달한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원만하고 영원한 모습" 이라고 예찬했습니다.

그런 야스퍼스가 생전에 이 신라 반가사유상을 봤다면 또 얼마나 놀랐을까요. 두 불상은 빼닮았습니다.

세 개의 봉우리처럼 솟은 삼산관을 쓰고,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얹은 반 가부좌로 앉아, 오른손 끝을 뺨에 대고 깊은 생각, 사유에 잠겨 있습니다.

세계인을 매료시킨 교토 반가상의 미소는 또 하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에도 깃들어 있습니다.

"슬픈 얼굴인가 하면 그리 슬픈 것 같지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면 준엄한 기운이 누르는,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

세 불상의 입가에 옅게 걸린 미소는, 우아하고 오묘하고 숭고한 자비로움 그 자체입니다.

세계에 일흔 점 남짓 남아 있는 반가사유상 중에 가장 뛰어난 세 작품이 모두 우리 선조들 손에서 탄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지닌 두 걸작은, 1년마다 교대로 전시하면서 한 점이 늘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었습니다.

일본이 진작부터 반가상의 감동을 한껏 섬세하게 살린 상설 전시공간을 만들어 세계적 명품으로 띄웠음을 생각하면 참 소홀했습니다.

이제 뒤늦게나마 두 반가상만 모신 '사유의 방'이 문을 열어, 이 고단한 시대, 마음 둘 곳 몰라하는 사람들을 사유와 묵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천 몇백 년 그 자태 그대로 흐트림 없이, 무엇을 그리도 골똘히 생각하는가. 인간의 업고여, 생로병사여. 아득히 벗어난 앳되고 예쁜, 젊은 그 얼굴!"

빛과 향기에 흙과 숯과 옻칠이 어우러진 천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연꽃 만나고 가는 한 줄기 맑은 바람같이 잠시 마음 내려놓고 쉬어갑니다.

잊고 살던 '참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12월 7일 앵커의 시선은 '고요한 미소에 빠져들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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