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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앵커의 시선] 사과는 쿨하게

  • 등록: 2021.12.16 21:47

  • 수정: 2021.12.16 21:52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인순이씨의 아버지는 주한미군이었습니다. 그가 뱃속에 있을 때 떠나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래 '아버지'를 불러 껴안았습니다. 그는 아기를 가졌을 때 "나를 많이 닮으면 어쩌나, 수도 없이 되뇌었다"고 했습니다.

혼혈인으로 자라며 받은 상처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기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보내, 덜 상처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이런 사연을 방송에서 털어놓고 "마음껏 욕해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원정 출산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연예인 학력 위조 파문이 일었을 때는 "중졸 학력을 고졸로 속였다. 변명이 필요없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때도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진솔한 고백과 사과 덕분 이었을 겁니다.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가 14년 전 대학 겸임교수 지원서에 허위 수상실적을 써넣은 의혹이 제기되자 "돋보이려는 욕심이 있었고, 그것도 죄라면 죄" 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시인하면서도 "나는 공무원도 공인도 아니며, 윤 후보와는 결혼하기 전의 일"이니 억울하다는 심경도 내비쳤습니다.

윤 후보도 "겸임교수는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니어서 채용비리라고 할 수 없다"고 감쌌습니다. 그랬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김 씨는 "국민께서 불편함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서 사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에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윤 후보도 "국민 눈높이에 미흡한 게 있다면 송구한 마음을 갖는 게 맞다"고 물러섰지만 "미흡하다면" 이라는 가정법을 썼습니다. "여권의 공세가 기획공세이고 아무리 부당하다 해도" 라는 단서도 달았습니다. 부부의 사과와 송구한 마음에서 불편한 심기가 느껴집니다.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들은 '사과는 쿨하게 하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다만' 같은 변명을 붙이지 말고,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어떤 잘못을 했건' '피해를 줬다니 유감' 같은 토를 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잘못된 사과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에만 너무나도 많이 봐 왔습니다. 더구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라면 국민이 어떤 태도를 원할지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대통령 후보가 된 이상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책임질 방법이 있다면 책임져야 합니다. 정치적 책임이든, 도덕적 책임이든, 법적 책임이든, 그 책임지는 자세를 보고 국민들의 마음이 녹을 수도, 더 차가워질 수도 있을 겁니다.

12월 16일 앵커의 시선은 '사과는 쿨하게'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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